새해가 밝았다. 

환갑을 맞는 새해 아침이다. 그런데도 보통 날처럼 그다지 설렘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마음먹은 각오도 없고 야무지게 짠 계획도 없다. 나이 듦에 대한 회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맨숭히 새해를 맞아도 되나 싶어 책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본다. 일단 올해 우리 조직과 나를 이끌 쌈박한 가르침 모토는 하나 정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어떻게 살아보자는 그럴싸한 한마디를 생각해 둬야지.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다. 60이라는 숫자 때문인가. 온통 황금 개띠 해라고 우리 나이의 갑자가 돌아온 해라고 난리다. 친구들의 카톡 내용도 그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환갑이 된 것을 자축하자는 의미는 아닐테고, 그만큼 나이가 들어 늙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호들갑이겠지.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은퇴하여 심심하게 보내고 있다. 좀 그나마 다부진 친구들은 당구나 등산 등에 나름의 열정을 쏟고 지낸다. 개인적으로는 늙지 않은 척 발버둥을 치고 지내지만 끌어 모아놓으면 영락없는 노털들이다. 머리털은 휑하고 얼굴살과 눈꼬리가 늘어져 있고 배는 두툼하고 움직임이 둔하니 평균적인 모습으로는 도저히 그 나이 때를 숨길 수 없다. 거기다 대화의 주제가 꼴통스런 정치관으로 넘어가고 때론 볼촉맞은 논쟁까지 덧대지면 감당할 수 없는 노추를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이 나이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친구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도전하는 것을 거부할 때 쓰는 정말 김빠지게 하는 언어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타박을 놓기도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러다 결국은 공감과 소통이 끊길테고 좀더 지나면 만남마저 소원해지겠지. 

언젠가 모임에서 하도 나이 타령을 해대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나이는 누가 강제로 떠먹인 게 아니니 억울할 것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이 힘든 생존 환경을 거쳐오면서 살아남으려고 치열히 노력을 하여 쟁취한 게 이 나이 아니냐. 이 나이는 여기에 이르지 못하고 떠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지금껏 죽기살기로 달려온 것은 이 나이에 이르기 위한 것 아닌가? 우리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온 거다!" 그리고 나는 한 동안 "나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라는 슬로건을 메신저 등에 쓰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그런데 나는 정말 늙었는가? 최근 내가 실제로 늙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가 결코 젊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솔직히 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건강은 오히려 갈수록 좋아지는 듯하다. 예전에 상시로 달고 다니던 감기에 걸리지 않은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술 많이 마시던 때 항상 조심스러웠던 과민성 대장증세나 장염도 최근엔 거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머리숱이 보기 딱할 정도로 많이 줄었고 치아를 1년에 하나 정도 인공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것이 노화의 증거이다. 체력도 더 좋아지는 면이 있다. 팔굽혀펴기는 한번에 30개 정도는 쉽게 하고 있고 그 수가 점점 늘어간다. 40대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골프 스코어도 갈수록 좋아지고 안정적이다. 한 두 번 연습하기만 하면 드라이버 거리도 예전보다 더 나간다. 다만 달리는 것은 좀 힘들다. 하지만 달리기도 좀 시간을 두고 연습하기만 한다면 상당한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다. 이런 방정맞은 소리 하다가 어느 날 덜컥 드러누워버릴 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자랑해보고 싶다.

그런데 내게 정작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영역은 지적 능력이다. 나 스스로도 나의 엄청난 학습 능력과 집중력에 놀라고 있다. 매월 한 번씩 하는 조찬세미나가 벌써 28번을 넘겼다. 두어 번 되풀이 강의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때그때 강의안을 새로이 만들었다. 강의 내용에는 내 전문분야인 특허전략, 영업비밀 보호, 특허경영, 경고장 대응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 있고, 창의력의 비밀, 스타트업 관련 강의, 계약합시다, 4차 산업혁명 등과 같은 상당한 과외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내가 좀 무모하게 도전했던 영역은 인문학 강의였다. 사실은 내가 좀 깊이 공부하고 싶어 덤벼들었던 주제들인데, 어떤 땐 십수권의 책을 읽기도 하고, 인터넷 등에서 수많은 자료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무모하게 도전을 저질렀던 강의 타이틀이 갈등관리,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 맹상군,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손자병법 등이다. 특히 손자병법은 전문을 그대로 재번역하였고 그것을 6번에 걸쳐 나누어 축차 강의를 하였다. 새해에는 협상과 한비자를 좀더 깊이 공부하고,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소설에도 손을 대봐야 겠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늙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젊어지고 있다고.
나는 지금도 체력과 지력이 성장하고 있고, 아직도 수많은 도전 꺼리를 가지고 있다. 그 도전 꺼리를 차근차근 정복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것이다. 내게 인생의 정점 즉 최고의 젊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젊음의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당연히 나는 아직 어리거나 젊은거야. 언젠가 그 정점을 경험하고 나면 신체적 지적 열화를 느끼게 될테고 그 때 가서야 비로소 늙었다고 혹은 늙어간다고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아직 충분히 젊어지지 못했다.  

나는 아직 더 젊어져야 한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나는 아직 도전할 꺼리가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점점더 성숙된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