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서 배운

무거운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법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덕에 지게를 져야할 일이 많았다. 
지게는 옛날 농가의 필수적인 수송수단이었다. 오로지 사람의 어깨에 의존하여 물건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힘과 경험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지만 쌀가마를 서너가마씩 쉽게 지거나 자기 키의 몇 배 되는 부피의 땔감을 지고 좁은 논두렁을 태연히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좀 몸에 익으면 사람의 힘으로 짐을 옮기는 데에는 이만큼 효율적인 도구도 없을 것 같다.

지게짐을 질 때 가장 힘든 것은 세워둔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과정이다. 일단 일어설 수만 있다면, 짐이 웬만큼 무거워도 지게가 등에 밀착되어 있어 발걸음을 떼고 걷을 수 있다. 지게 작대기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기도 하지만 정작 무거운 짐은 그걸로는 어림도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그 해 아버지는 양파 농사를 크게 하셨다. 논에 뽑아논 엄청난 양의 양파를 도로에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난생 처음으로 제대로 지게를 져보게 되었다. 가벼운 짐을 지고 다닌 경험이야 많았었지만, 제대로 일답게 짐을 져본 일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바지게(지게 위에 얹혀 짐을 담는 소쿠리 같은 물건)에 남들만큼 양파 다발을 얹어 담기까지는 했는데,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다.
짐이 무거우니 허리를 굽혀서 일어나야 하는데, 허리를 굽히면 짐이 머리를 넘어 앞으로 쏟아지고, 허리를 굽히지 않고는 다리에 힘을 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오셔서 도와주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도와주신 방법은 너무도 신통했다. 그 버거운 짐을 거짓말같이 쉽게 지고 일어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그저 아버지는 나에게 뒤로 마구 뻗대라고 하시고는 짐을 진 내 뒤에서 지게를 앞쪽으로 사정없이 앞으로 미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뒤에서 미는 힘에 대항하여 뒤쪽으로 힘껏 뻗대야 했고, 그러자 믿기 힘들 정도로 금세 일어서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을 기억한다.
도와 주는 사람은 들어주는 게 아니라 밀어줘야 하는 거다.

그건 바로 기초 물리에서 배운 합력의 원리이다. 앞에서 뒤로 뻗대는 힘(F1)과 뒤에서 미는 힘(F2)이 상호 작용을 하여 상향의 합력(FR)을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과 시도해보았다. 내가 도움을 주기도하고 받기도 해보았지만, 아버님와 함께 하던 것처럼 그렇게 원만히 잘 되지가 않았다. 그건 상대에 대한 강한 믿음과 이 작용의 효과에 대한 믿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다부지게 서로 함께 힘을 써야만 하는데, 어느 한 한 쪽에라도 믿음이 부족하면 충분히 힘을 쓰지 못하여 상승 방향의 합력이 충분히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자 때는 통상 그 사람이 힘을 쓰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힘을 더해줌으로써 짐을 덜어준다. 물건을 들 때는 드는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는 나아가는 순방향으로 힘을 보태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지게를 지고 일어나게 돕는 방법은 오히려 그 반대로 역방향의 힘을 가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달았다. 사실 짐을 지고 일어서는 힘의 거의 대부분은 짐을 지는 당사자에게서 나온다. 도와주는 사람의 역할은 짐지는 사람이 일어설 때 뒤로 밀리지 않도록 역방향의 힘으로 뒤에서 밀어 받쳐주는 것이다.

사람의 성장을 도울 때도 지게짐 돕는 것과 다르지 않다. 쉽게 일어나도록 짐을 덜어주는 것보다, 자신의 성장 반발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거스르는 힘을 가해주는 것이 제대로 이끌어주는 방법이다.  


짐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이다. 적은 짐을 실고 얕은 언덕을 오를 때는 그저 뒤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수레의 짐이 많고 경사가 급한 언덕을 오를 때는 밀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더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밀어주는 것보다 앞의 운전자의 손잡이에 큰 부하를 가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도움 방법이다. 그래서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짐수레를 앞으로 밀지 말고 짐수레의 뒷단을 위로 들어 올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운전자는 지면과의 강한 밀착력에 힘입어 그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만 하면 오르막을 신통하게 오를 수 있게 된다. 이것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신통한 일머리 중 하나이다.

물살이 센 개울을 건널 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

그리고..

짐 가진 사람을 도울 때 
덜어주는 것보다
더해주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