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보호2009.03.24 20:05

특허법원, 권리범위확인심판 심결취소소송에서 진보성을 판단하다!

(특허법원 2009. 2. 18 선고 20083889 판결)

이제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무효의 항변을 제한없이 받아들여 심리하도록 하겠다는 준비된 의지를 보인 것이다. ... 권리범위확인심판의 정체성은 상당 부분 상실되게 될 것이다... 변리사가 특허 소송에서 법원의 심리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번 판결을 확산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

 

특허법원은 최근 권리범위확인 심결취소소송(2009. 2. 18 선고 20083889 판결)에서 특허발명이 진보성이 없는 경우 그 특허권의 권리행사를 제한한다고 판결하였다. 진보성 흠결을 이유로 특허가 무효사유에 해당함이 명백할 경우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판결은,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특허발명의 진보성을 포함한 사실상 모든 무효사유를 제한 없이 다룰 수 있도록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 항변의 길을 대폭 넓혀놓았다는 점에서, 우리 특허심판 실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는 무효심결의 확정이 없으면, 신규성, 기재불비, 실시불가능 등 한정된 경우에 한하여 무효의 항변이 인정되어 왔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특허법원이 권리범위확인심판 본연의 판단영역을 초월하여 특허발명의 무효사유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특허발명의 권리범위를 제한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판결문은 근 7페이지에 걸쳐 매우 구체적으로 논리 정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데 금번 판결은 일부 재판부에 의한 단순한 진보적 시도가 아니라, 특허법원이 단단히 마음먹고 차제에 심판 실무를 대폭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계산된 정책적 의도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무효의 항변을 제한없이 받아들여 심리하도록 하겠다는 준비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사실 기존과 같은 권리범위확인심판과 무효심판의 비교적 엄격한 역할분담은, 이 판결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심판 내지 소송의 공평성(특허권자의 이익과 실시자의 불이익), 신속성(무효심결 확정 시까지 소송절차 중지), 경제성(원하지 않는 무효심판 절차의 강요) 및 적정성(무효심결 확정시까지 특허의 유효를 전제로 한 권리범위확인 심결이나 판결은 무용지물)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제공하였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우리 심판제도의 문제점을 익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번 판결의 논리적 배경에 상당 부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판결의 파급효과에 적잖은 우려가 예상된다.

첫째,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권한 분배 원칙 등이 손상될 수 있다.
판결은, 그 논지가 권리범위확인심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법원에서의 특허침해소송에도 적용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법원들이 침해 판단 시 특허의 무효성을 적극적으로 심리하여야 함을 사실상 강력히 조장하고 있다.
행정기관인 특허청이 창설적으로 부여한 권리를 사법부가 무효 여부를 심리하고 그 실재를 부정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 판결은 충분히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판결은
추상적인 권리범위 전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권한 분배의 원칙이나 공정력의 이론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법원이 무효사유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판결하고 그것이 확정되면, 그 특허권은 사실상 대세적으로 권리의 효력을 잃게 된다. 여하히 달리 표현하더라도, 재판에서 무효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되면 그 구체적인 사건에서의 권리행사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대세적인 개념의 특허권 전부가 실질적으로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권한 분배의 원칙이나 공정력의 이론에 반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심판 기능이 대폭적으로 퇴화될 수 있다.
이 판결의 논지가 확산되면, 권리의 유무효와 권리범위 속부의 판단에 관한 전문기관인 특허심판원의 기능이 상당히 축소될 것임이 자명하다.
우선은 무효심판의 청구율이 대폭 낮아지게 될 것이다.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특허의 실질적인 무효여부를 심리하게 되므로 무효심판을 청구할 필요가 없어짐은 당연하다.
이 판결의 경우에서도 보면, 권리범위확인심판의 취소소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허발명과 확인대상발명을 비교하는 권리범위확인심판 본연의 과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특허발명과 공지의 비교대상발명과 비교하는 무효 확인 과정만이 존재하고 있다. 권리범위확인심판이 사실상 무효심판으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이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불가피하게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무효사유를 적극적으로 다투어야 하므로권리범위확인심판의 정체성은 상당 부분 상실되게 되어 버렸다.

그런 한편, 무효사유의 심리까지 떠맡은 권리범위확인심판도 그 운명이 그리 밝지 않다.
법원이 권리의 무효가부와 침해여부를 동시에 판단할 것이므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고려할 때 법원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경우 굳이 특허심판원에 중복하여 물을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심판은 궁극적으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극도로 퇴화하고, 비교적 권위가 낮고 실효적 효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시험적, 예비적, 예방적, 잠정적 혹은 선언적 판단 기능에 머물게 될 것이다.

셋째, 심판 기능의 퇴화는 특허분쟁 해결의 적정성을 현저히 손상시킬 수 있다.
일반 법원에서 진보성 등 유무효와 권리범위를 판단한다는 것은, 기술 및 특허분야의 비전문가인 판사와 변호사가 당업자의 지위를 상정하여 발명의 신규성과 진보성을 서로 공방하고 심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기술 비전문가가 아닌 법률전문가들만의 논박으로 심리의 적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야구시합에 축구 선수들이 와서 심판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특히 전술과 같이
심판 이용률 및 심판 기능의 저하된 상태에서는 특허분쟁 해결의 적정성이 가속적으로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사실 그동안 무효심판과 권리범위확인심판의 병립은 심리의 적정성을 높이는 데 알게 모르게 중대한 역할을 하여 왔다. 특허권자는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는 권리의 확장지향적 해석을 추구하고 무효심판에서는 축소지향적 해석을 추구하게 되므로, 이러한 상호 배반적 논리구조가 사실상 '보이지않는 손에 의한 심리'를 상당 부분 담당하여 심리의 효율과 적정성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이 판결의 파급효과로 권리범위확인심판에의 편중, 전반적 심판 이용율 및 기능 저하, 비전문가에 의한 심리의 증대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이러한 현상은  특허분쟁 판단의 적정성 저하로 귀결될 것이다.

여하튼, 이 번 판결이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우려점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법률서비스 수요자의 입장과 소송 경제, 신속성, 공정성 등을 고려할 때, 이 판결이 추구하고 있는 판단의 주체와 심리절차가 집중되어야 한다는 대 명제를 거부하긴 어렵다. 하나의 특허분쟁에 적게는 2~3건, 많게는 5~6건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여야 하는 구조는 어떤 명분에서든 미련하게 고집만 부리기 어려운 곤란한 시스템임에 틀림이 없다.
어차피 이 판결의 방향이 대세적으로 피할 수 없다면, 
판결의 취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적절한 변론 품질과 재판부의 신뢰도 높은 심리 과정이 선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 해결의 키는 오랫동안 논란을 지속하고 있는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내지는 공동대리의 문제로 귀착된다. 변리사가 특허 소송에서 법원의 심리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번 판결을 확산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아울러, 행정부의 행위와 사법부의 행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의 조절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려한 전반적 개혁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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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mnews.imbc.com/news/2012/society/article/3008732_101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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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