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8.06.03 22:38

 

召樓緩謀曰

我先王因世之變以長南藩之地屬阻漳滏之險立長城又取藺郭狼敗林人於荏而功未遂今中山在我腹心北有燕東有胡西有林胡樓煩韓之邊

누완(樓緩)을 불러 상의하며 말하기를,나의 선왕께서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남쪽 변방의 땅을 넓히고, 장수(漳水)와 부수(滏水)의 험난한 지세를 따라 장성을 쌓으셨소. 또 인()과 곽랑(郭狼)을 취하고 임()에서 임호(林胡)를 무찌르셨으나 그 공업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소.

지금 중산은 우리 뱃속 한가운데에 있고, 북으로 연나라가 동으로는 호()나라가 있으며, 서쪽은 임호, 누번(樓煩), 진나라, 한나라의 변경이오.

 

而無彊兵之救, 是亡社稷, 柰何?

夫有高世之名, 必有遺俗之累

吾欲胡服.“

그러니 강력한 병력의 보호가 없으면 사직은 망할 수밖에 없소. 어찌하면 좋겠소?

무릇 세상에 그 이름을 높이고자 하면, 물려받은 풍속을 위배하여야만 될 때가 있는 법이오. 나는 호복(胡服)을 입고자 하오.“

 

樓緩曰 善. 羣臣皆不欲

누완이 좋습니다.”라고 했으나, 다른 신하들은 모두 원치 않았다.

 

於是肥義侍 王曰 簡 襄 主之烈 計胡翟之利. 爲人臣者寵有孝弟長幼順明之節 通有補民益主之業 此兩者臣之分也. 今吾欲繼襄主之跡 開於胡翟之鄕 而卒世不見也

그 자리에 비의가 왕을 모시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간자(簡子)와 양자(襄子) 두 주군은 호()나라와 적()나라를 제압하고자 도모했었습니다.

그분들의 후손으로서, 은혜 갚음은 예의범절에 따라 절조를 지키는 것이고, 뜻의 이음은 백성의 이익과 군주의 업을 보내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후손의 직분이지요.

이제 나는 양자(襄子)의 업적을 이어서, 호나라와 적나라의 땅에까지 확장함으로써, 마침내 세상에서 보이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爲敵弱 用力少而功多 可以毋盡百姓之勞 而序往古之勳.

夫有高世之功者, 負遺俗之累. 有獨智之慮者, 任驁民之怨.

今吾將胡服騎射以敎百姓, 而世必議寡人, 柰何?」

 

적을 약하게 하면서 힘은 적게 들여 공을 많이 이루고, 백성의 수고로움이 다하지 않도록 하고도, 옛날의 공적을 펼치고자 합니다.

무릇 세상에 높은 공적을 이룬 사람은 옛날의 풍속에 누를 끼치는 짐을 져야 합니다. 홀로 지혜로운 생각을 가진 자는 변화를 싫어하는 백성들의 원망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제 나는 호복을 입고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것(胡服騎射)을 백성에게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틀림없이 과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뒷말이 많을 것입니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 () : 준마, 거만하다, 뻣뻣하다, 거칠다.

 

肥義曰 臣聞 疑事無功 疑行無名. 王旣定負遺俗之慮, 殆無顧天下之議矣.

論至德者 不和於俗成大功者 不謀於衆

昔者舜舞有苗禹袒裸國非以養欲而樂志也務以論德而約功也愚者闇成事智者覩未形則王何疑焉。」

비의가 말했다. “신이 듣기에, 의심하며 한 일은 공을 이룰 수 없고, 의심하며 한 행위는 명성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왕께서 이미 물려받은 관습의 우려에 대해 부담을 지기로 결정하셨으니 천하의 뒷말은 돌아보시지 않아도 됩니다.

무릇 지극한 덕을 논하는 사람은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고, 큰 공을 이루는 자는 여러 사람과 도모하지 않습니다.

옛날 순() 임금은 묘()의 춤을 추었고, () 임금은 나국(裸國)에서 옷을 벗었지만, 이는 욕망을 길러 즐기자는 뜻이 아니라, 덕을 논하고 공을 기약하기 위해 힘쓴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일이 이루어져도 제대로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형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그것을 봅니다.

그러한데 왕께서는 무엇을 의심하고 계십니까?”

** 웃통 벗을 단. 어두울 암. 볼 도.

 

王曰:「吾不疑胡服也吾恐天下笑我也狂夫之樂智者哀焉愚者所笑賢者察焉世有順我者胡服之功未可知也雖驅世以笑我胡地中山吾必有之。」於是遂胡服矣

왕이 말했다. “나는 호복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가 나를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미친 자가 즐거워하는 것에 지혜로운 사람은 비애를 느끼고, 어리석은 자가 비웃는 것을 현명한 사람은 깊이 살핍니다. 세상이 나를 따른다면 호복으로 인한 공은 이루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비웃을지언정 호의 땅과 중산을 내가 반드시 차지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호복을 입었다.

 

使王緤告公子成曰:「寡人胡服將以朝也亦欲叔服之家聽於親而國聽於君古今之公行也子不反親臣不逆君兄弟之通義也今寡人作敎易服而叔不服吾恐天下議之也

制國有常利民爲本從政有經令行爲上

明德先論於賤而行政先信於貴

왕설(王緤)을 시켜 공자 성()에게 말했다. “과인이 호복을 입고 조회에 임할 터이니 숙부께서도 호복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집에서는 양친의 말씀을 따르고, 나라에서는 군주의 말을 듣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인의 바른 행동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뜻에 반하지 않고, 신하가 군주를 거스르지 않는 것은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의리입니다. 지금 과인이 복장을 바꾸라고 명령했거늘 숙부께서 입지 않으신다면 천하가 이를 두고 말들이 많을까 두렵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은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정무를 처리하는 원칙은 명령이 위에서부터 시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덕을 밝히고자 할 때는 먼저 아랫사람부터 논의를 하여야 하고, 정책을 실행하고자 할 때는 먼저 윗사람부터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 〈【集解徐廣曰:「兄弟一作元夷』。始也平也。」〉

 

今胡服之意非以養欲而樂志也事有所止而功有所出事成功立然后善也

지금 호복을 입는 뜻이 욕심과 즐거움 때문이 아닙니다. 일에 이르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공이 성과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일이 성사되고 공을 세운 다음이라야 다 잘 된 것입니다.

今寡人恐叔之逆從政之經以輔叔之議且寡人聞之事利國者行無邪因貴戚者名不累故願慕公叔之義以成胡服之功使緤謁之叔請服焉。」

지금 과인은 숙부께서 정치의 원칙을 거역하고 숙부께서 반대하는 자들을 따르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그리고 과인이 듣기에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동에는 사악함이 없고 귀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자는 명성에 누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숙부의 명성에 힘입어 호복의 공업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에 왕설에게 숙부를 뵙고 호복을 입어 주십사 청하는 것입니다.”

 

公子成再拜稽首曰:「臣固聞王之胡服也臣不佞寢疾未能趨走以滋進也王命之臣敢對因竭其愚忠臣聞中國者蓋聰明徇智之所居也萬物財用之所聚也賢聖之所敎也仁義之所施也詩書禮樂之所用也異敏技能之所試也遠方之所觀赴也蠻夷之所義行也今王舍此而襲遠方之服變古之敎易古人道逆人之心而怫學者離中國故臣願王圖之也。」

공자 성은 두 번을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신이 왕께서 호복을 입으신다는 얘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신은 불초한 데다 병석에 오래 누워있는 통에 달려가 인사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왕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하니 신이 감히 그에 대해 어리석으나마 충정을 다하고자 합니다. 신이 듣기에 중국은 총명하고 예지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자, 만물과 재화가 모여드는 곳이자, 성현의 가르침을 행하는 곳이자, 인의로 나라를 다스리는 곳이자, (), (), 예악이 행해지는 곳이자, 기교와 기능이 펼쳐지는 곳이자,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보러오는 곳이자, 오랑캐들이 모범으로 받드는 곳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이런 것들을 버리고 먼 곳의 복장을 입어 고인의 가르침과 법도를 바꾸고, 인심을 거역하고, 학자들과 어긋나고, 중국과 멀어지려 하십니다. 이에 신은 왕께서 이를 진지하게 고려해 주시길 바라옵니다.”라고 했다.

 

使者以報王曰 吾固聞叔之疾也, 我將自往請之.”

王遂往之公子成家, 因自請之.

사신이 이를 보고하자 왕은 내가 숙부께서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직접 가서 청을 드려야겠다.”고 했다.

이에 왕은 공자 성의 집으로 가서 친히 그에게 이렇게 청했다.

 

曰 夫服者 所以便用也 禮者 所以便事也. 聖人觀鄕而順宜, 因事而制禮, 所以利其民而厚其國也. 夫翦髮文身, 錯臂左衽, 甌越之民也. 黑齒雕題, 卻冠秫絀, 大吳之國也. 故禮服莫同, 其便一也. 鄕異而用變, 事異而禮易. 是以聖人果可以利其國, 不一其用. 果可以便其事, 不同其禮.

무릇 옷이란 것은 입기에 편하기 위한 것이고, 예라는 것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인들께서는 사는 곳에 따라 그 편의에 따르고, 일에 따라 예를 제정했기 때문에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나라는 부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월(甌越)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몸에 문신을 하고, 팔짱을 끼고, 왼쪽 어깨를 드러냅니다. 이를 검게 물들이고, 이마에 문신을 하고, 물고기 껍질로 된 모자를 쓰고, 거친 옷을 입는 것은 대오(大吳)라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예의와 복장은 다 달랐지만 편리라는 점에서는 한 가지였습니다. 사는 곳이 다르면 그 활용이 변하고, 일이 다르면 예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그 나라에 이롭다면 한 가지 방법에만 매이지 않았고, 그 일에 정말 편리하다면 똑 같은 예의를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儒者一師而俗異中國同禮而敎離況於山谷之便乎故去就之變智者不能一遠近之服賢聖不能同窮鄕多異曲學多辯不知而不疑異於己而不非者公焉而衆求盡善也

학자는 같은 스승에게서 나오지만 습속은 다릅니다. 중국은 예의는 같지만 교화는 다 다릅니다. 하물며 산속의 편리함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따라서 거취의 변화는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한 가지만을 강구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복장을 성현이라도 일치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석진 곳일수록 이상한 것이 많고, 왜곡된 학자일수록 궤변이 많습니다. 모르면 의심하지 않고 자기와 다르면 비난하지 않아야 공정하고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今叔之所言者俗也吾所言者所以制俗也

지금 숙부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풍속 그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풍속을 만드는 이치에 대한 것입니다.

 

 

吾國東有河薄洛之水與齊中山同之無舟楫之用自常山以至代上黨東有燕東胡之境而西有樓煩韓之邊今無騎射之備

우리나라는 동으로 황하와 장수(漳水)로서 제나라의 중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배를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상산(常山)에서 대()나라, 상당(上黨)에 이르는 동쪽은 연나라, 동호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 누번, ()나라, 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故寡人無舟楫之用夾水居之民將何以守河薄洛之水變服騎射以備燕三胡韓之邊

 

且昔者簡主不塞晉陽以及上黨而襄主幷戎取代以攘諸胡此愚智所明也先時中山負齊之彊兵侵暴吾地係累吾民引水圍鄗微社稷之神靈則鄗幾於不守也先王醜之而怨未能報也今騎射之備近可以便上黨之形而遠可以報中山之怨而叔順中國之俗以逆簡襄之意惡變服之名以忘鄗事之醜非寡人之所望也。」公字成再拜稽首曰:「臣愚不達於王之義敢道世俗之聞臣之辠也今王將繼簡襄之意以順先王之志臣敢不聽命乎!」再拜稽首乃賜胡服明日服而朝於是始出胡服令也

 

이에 과인은 배를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물에서 사는 인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황하와 박락수(薄洛水)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복장을 바꾸고 말을 타고 활을 쏨으로써 연나라, 삼호(三胡), ()나라, 한나라의 변경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 조간자께서 진양과 상당에 요새를 쌓지 않았기에 조양자께서 융나라를 병합하고 대나라를 취하여 호나라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도 총명한 자도 다 아는 일입니다. 일전에 중산이 제나라의 강력한 군대를 등에 업고 우리 땅을 침범하여 우리 인민들을 힘들게 하고 물을 끌어들여 호()를 포위했습니다. 사직의 신령이 돌보지 않았더라면 호는 거의 지키지 어려웠을 것입니다.

 

선왕께서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셨고, 원한은 아직 갚지 못했습니다. 지금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으로 방비한다면 가깝게는 상당의 형세가 편해질 수 있고, 멀리는 중산에 대한 원한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숙부께서는 중국의 습속에 따르시느라 간자, 양자의 뜻을 거스르고 복장을 바꾸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호에서의 부끄러운 일을 잊고 계신 것 같으니 이는 과인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공자는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신이 어리석어 왕의 뜻을 깨닫지 못한 채 감히 세속의 들은 바만 늘어놓았으니 신의 죄입니다! 지금 왕께서 간자, 양자의 뜻을 잇고 선왕의 의지를 따르겠다고 하시니 신이 어찌 감히 왕의 명을 듣지 않겠습니까?”라며 다시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에 호복을 내렸고, 다음 날 이것을 입고 조회에 나왔다. 이에 호복령을 처음으로 내렸다.

 

趙文趙造周袑趙俊皆諫止王毋胡服如故法便王曰

조문(趙文), 조조(趙造), 주소(周祒), 조준(趙俊)이 모두 왕에게 호복을 입지 말 것과 옛날 법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아뢰었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先王不同俗, 何古之法. 帝王不相襲, 何禮之循. 虙戲神農敎而不誅, 黃帝堯舜誅而不怒. 及至三王隨時制法因事制禮法度制令各順其宜衣服器械各便其用故禮也不必一道, 而便國不必古.

선왕들의 습속이 다 같지 않은데 어떤 법을 말하는가? 제왕들이 서로 이어받지 않았는데 어떤 예를 따르자는 말인가?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은 교화만 했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황제(黃帝), (), ()은 사람을 죽이긴 해도 꾸짖지 않았다. 삼왕(三王)에 이르기까지 때에 따라 법을 만들고 일에 따라 예()를 제정했다. 법령과 제도는 각각 그 편의를 따랐고, 의복이나 기계는 사용하기에 편하도록 했다. 그러므로 예가 반드시 한 가지 길일 필요는 없으며, 나라를 편하게 하는데 굳이 옛것일 필요는 없다.

 

聖人之興也不相襲而王殷之衰也不易禮而滅然則反古未可非而循禮未足多也且服奇者志淫則是鄒魯無奇行也俗辟者民易則是吳越無秀士也

성인이 일어난 것도 옛 것을 이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었고, 하나라와 은나라는 쇠약해지는데도 예를 바꾸지 않아 망한 것이다. 따라서 옛 것에 반대한다고 비난할 수 없으며, 예에 따른다고 해서 칭찬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복장이 기이하니 그 뜻이 음탕하다고 한다면 추()나라, ()나라에는 기이한 행동이 없을 것이고, 습속이 나쁜 지역의 사람은 좋지 않다고 한다면 오나라, 월나라에는 좋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且聖人利身謂之服, 便事謂之禮. 夫進退之節, 衣服之制者, 所以齊常民也, 非所以論賢者也. 故齊民與俗流, 賢者與變俱. 故諺曰 以書御者不尽馬之情, 以古制今者不達事之変循法之功, 不足以高世 法古之学, 不足以制今. 子不及也.”

遂胡服招騎射

그리고 성인께서는 몸에 편리한 것이 옷이고, 일에 편리한 것이 예라고 하셨다. 진퇴의 범절과 의복의 제도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현명함 여부를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은 풍속과 함께 흘러가게 하는 것이며, 현명함이라는 것은 변화와 더불어 갖추어지는 것이다. 속담에 글로 말을 몰고자 하는 자는 말의 성정을 다 알지 못하며, 옛것으로 지금을 규제하려고 하는 자는 일의 변화를 충분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법을 좇는 공만으로는 세상을 뛰어넘을 수 없고, 옛날 학문만을 본받아서는 현재를 규제하기에 부족하오. 그대들이 이에 미치지 못한 것이오.”

마침내 호복을 입고 기병과 사수를 모집했다.

 


번역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46912&cid=49636&categoryId=56736

원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75037&cid=49636&categoryId=56737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