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산소


말 그대로 온 삭신이 쑤신다.

그저께 아버지 호출로 산소의 잡초를 제거하느라 하루를 사역하였더니 그 후유증이다. 평소 안하던 노동에 안쓰던 근육을 썼으니 편할 턱이 없다. 앉아도 누워도 도통 편하질 않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괜찮으시단다. 함께 일한 90세 노인보다 못한 내가 부끄럽다.

아버지의 산소관리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시다.
어머니 말씀대로 산소 잔디를 그야말로 공단 같이 가꾸신다. 15~6년 전에 내가 충청도 웅천에까지 가서 석물을 해와서 모든 산소를 일괄적으로 정비하면서, 그 때 잔디를 공들여 깔았었는데.. 그 후로 잡초 하나 없이 유지되어 왔다. 그렇게 유지된 건 순전히 아버지의 까탈스런 관리 덕이다.

산소에 가보니 잡초가 적잖이 나 있다. 잎넓은 풀들은 시들어있고
군데군데 마른 풀더미가 있는 걸 보니 다녀가신지 1주일도 안된
거 같다. 여쭤보니 손수 제초제를 치셨단다. 분무기를 메고 와서.. ㅠㅠ..

아버지의 이런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가 물려받으면 이처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알고 게실텐데.. 이 못미더운 아들에게 어찌 물려주려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심히 설명해주신다. 황새배기(억새 종류)는 뿌리가 깊고 넓어서 뿌리채 제거가 안된다.. 잎사귀를 기울여 근사미(제초제 일종)에 담그면 뿌리채 죽는다.. 왕포아풀 등 씨번식이 강한 것은 수시로 한달에 두어번 와서 뽑아주는 방법 밖에 없다.. 조금만 지체되면 온통 그 잡초들 천지가 된다..

내가 보기엔 모두 산소를 푸르게 덮어주고 있는 푸른 풀인데.. 꼭
그렇게 인종 차별 아니 초종 차별을 해야할까 싶다. 인간의 욕심이 죄없는 풀을 박해하고 있지나 않나 생각하면서도.. 초종 차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러다 한 가지 가르침을 주신다.
"강한 놈이 사실은 가장 약한 기라. 황새배기는 뿌리가 질기고 잘 죽지 않지만 웃자라서 드러나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될 수 밖에 없는 기라.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걱정은 걱정이다. 말없이 일은 했지만, 속으로는 머잖아
내 손으로 산소를 정리해야할 것이라는 불경스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대의 애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지도 모르니..

(2017.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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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버지의 돈을 훔친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70년대 초반인 당시에는 용돈이라는 것을 주고받고 할 그런 형편들이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는 주변에서 누구나 인정해줄 정도로 정말 야물게 안 쓰고 안 입고 모아서 식구들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림을 일구신 분이다. 그래서 적어도 경제권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오로지 쥐고 계셨다.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식구는 돈을 써야 할 때마다 매번 힘들게 아버지를 설득하여야 했다. 그런 분에게 용돈이라는 말은 손톱도 들어가지 않을 턱도 없는 말이다.

우리 논에서 나온 비닐 등 폐 농자재를 고물상에 팔기도 해서 어느 정도 푼돈을 쓰기도 했지만, 중학교를 들어가 무협지와 만화에 재미를 붙이면서 턱없이 부족한 용돈에 허덕이고 있었다.


안방에는 아버지의 궤짝이 있었다. 가로 3자 높이 2자 정도 크기에 한 때는 자개 장식이 있었을 것 같은 낡은 옻칠 궤짝으로, 집안일에 관련되는 문서들과 돈을 보관해두는 곳이다. 당시에는 은행을 잘 이용하지 않았으니, 그 궤짝이 우리 집의 금고인 셈이다. 이 궤짝에는 주먹만한 다이얼 자물쇠가 달려있는데, 전후로 왔다갔다 돌리며 번호를 맞추는 것이라 그 비밀번호는 알아내질 못했다. 그런데 문짝이 경첩에 의해 열리는데, 이 경첩이 낡아서 간당간당하는 것이다. 그 문짝 틈새 사이로 납작한 드라이버를 넣어 슬쩍 제치니 경첩이 떨어지며 문짝이 열린다.

지폐다발이 눈에 보인다. 아마 천 원짜리였겠지. 거기서 한 장을 빼냈다. 그리고 다시 문짝을 밀어 넣으니 별 표시가 남지 않고 원상복구가 되었다.

난 그 돈으로 상당 기간 적어도 몇 달을 정말 알차게 풍족히(?) 썼다. 가방 한쪽을 무협지로 가득 채워서 빌려오면 밤새 읽고 아침에 학교가면서 반납하고, 저녁에는 또 빌려오고.. 그러다 그 돈이 떨어지자 다시 범행을 저질러야 할 운명의 때가 온 것이다.


거사하기로 마음먹은 날. 주위를 나름대로 살펴본 후 드라이버를 경첩에 밀어 넣고 문짝을 여는 순간, 우찌 이런 일이..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셨다. 어머니도 뒤이어서..

온 세상이 노랗게 변한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질지, 벼락이 칠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바닥만 보고 멍청히 서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원 같은 짧은 침묵이 지나고, 결국 어머니가 입을 여신다. “야~야~ 니가 와이라노. 나가봐라.”그게 전부였다. 


아버지의 침묵, 그것은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다 무서운 질책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아무 말을 더 하지 않았다.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시 애들에 대한 폭력은 일상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런데 아버지는 누구에게든 전혀 폭력을 쓰지 않으셨다. 아니 단 한번 있다. 고양이 힘도 빌려야 한다는 그 바쁜 모심기철에 무엇 때문인지 옆에 졸졸 따라다니며 부아를 채운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참을 참고 견디시다가 참다못해 내 귀퉁배기를 한 대 올리셨다. 그게 유일한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의 추억이다.

당시 우리 동네의 이웃들은 다들 형편이 딱했다. 먹고살기 어려우면 가정 폭력도 많은 법이니, 주위 또래 동무들은 그 부모들에게 늘상 맞고 자랐다. 그들이 맞아야 되는 주된 이유는 거짓말, 도둑질, 싸움 등과 같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나쁜 짓이다. 그런 교화를 충분히 많이 받고 자란 그 친구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길로 빠져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의 어른으로 성장했다.


가끔 그 사건을 가만히 생각한다.

그때 아버지는 왜 아무 말도 안하셨을까? 자식에 대한 교육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서는 아니 되는 일인데. 나는 상당한 벌을 에상하고 있었었다. 어떤 벌도 달게 받았어야 한다.

내 아들이 그런 짓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둥 최소한의 잔소리라도 좀 했을 거 같은데.

휘어진 나무를 초기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따끔하게 매를 들어 벌을 주었다면, 나는 더 착하고 더 훌륭한 인간이 되었을까? 내 볼촉맞은 성격을 생각한다면 필경 더 좋아지지는 않았을 거 같기는 하다.


아버지에게 감사하여야 할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고마움 중에 이 일이 내게는 가장 고마운 일이다. 돈을 훔친 짓을 그냥 말없이 지나쳐주신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나를 ‘용서’하셨고, ‘용서’의 방법은 아무 말도 하시지 않는 것이었다. “침묵에 의한 용서”를 택하신 것이다.

사실 그 뒤로도 용서받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침묵으로 용서를 대신하셨다. 오히려 작은 잘못은 짜증이 날 정도로 반복해서 질책을 하셨지만, 정작 큰 잘못에는 아무 말없이 지나치셨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간의 언어도 규정하게 되면, 그 시점에서부터 언어에 의해 구속되게 된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버지가 내가 한 짓으로 벌을 주거나 교육하고자 하는 순간, 나는 그 때부터 명백히 돈을 훔친 도둑놈이 된다. 그리고 내게는 그리고 아버지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는 도둑질, 도둑놈이라는 관념이 영원히 각인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도둑의 개념이 내게 규정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도둑’이라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서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其恕乎].”(논어 위령공편)라고 말하였다. ‘서(恕)’는 ‘용서’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40중반의 그 젊은 나이에 공자의 깨달음을 몸으로 실천하신 것이다.

용서의 진정한 의미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어떤 논리나 지식으로 용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그저 본능적으로 침묵하고 잊어주도록 행동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용서는 진정 인간이 신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용서는 결국 사랑이다.

사랑 없는 용서가 있을 수 없고, 용서 없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용서는 사랑의 마지막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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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사랑으로 인해 사랑을 잃게 된다(愛有所亡)



말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 있다.

그는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대합 그릇으로 오줌을 받아낼 정도였다.

마침 모기나 등애가 말등에 붙어 있어 불시에 때렸다.

이에 말이 놀라 재갈을 풀고 머리를 들이받으며 가슴을 걷어찼다.

말을 아끼는 뜻은 그토록 지극한 바가 있었지만, 

그 아끼는 마음으로 인해 아끼던 것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愛馬者(부애마자) 以筐盛矢(이광성시) 以蜄盛溺(이신성뇨).

適有蚊蝱僕緣(적유문맹복연) 而拊之不時(이부지불시),

則缺銜毁首碎胸(즉결함훼수쇄흉). 

意有所至(의유소지) 而愛有所亡(이애유소망) 可不愼邪(가불신야)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

2500년 전의 이 고사가 현대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자녀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말을 아끼는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 별로 의미없는 명품 옷과 고급 환경 등으로 과도하게 베풀며 키우고,  

그러다 아이를 너무도 아끼는 욕심에서, 아이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강요하며 이끌거나 아이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힘든 정서적 자극을 가한다. 

아이는 좌절하거나 반발하고, 그리하여 아이의 역량을 억압하거나 장래를 망친다. 더욱 나아가서는 말에게 가슴을 걷어차이듯 큰 상처를 입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망가뜨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크면 클수록 잘못된 결과가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장자는 이러한 사람의 심성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사랑을 잃게 된다(愛有所亡)는 것을. 





** 

筐(광) 광주리. 盛(성) 성하다, 담다. 矢(시) 화살, 똥. 蜄(신) 큰 (대합)조개, 溺 빠질 익, 오줌 뇨. 蚊(무) 모기. 蝱(맹) 등애. 適(적) 맞다, 마침. 僕(복) 종, 붙다. 緣(연) 인연, 까닭, 겉. 拊(부) 어루만지다, 악기를 타다, (가볍게) 치다. 缺(결) 없어지다, 빠지다. 銜(함) 재갈. 毁(훼) 헐다, 손상하다. 碎(쇄) 부수다. 愼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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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
_ 예기(禮記) 단궁하편(檀弓下篇)


공자가 태산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에서 곡을 하고 있으니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공자는 머리 숙여 곡소리를 듣다가, 자로를 시켜 사연을 물어보게 하며 말했다.
"그대의 곡을 들으니 굉장히 슬픈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 저의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저의 남편도 그렇게 죽었는데, 오늘은 저의 아들이 또 그렇게 죽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여길 떠나지 않소?
부인이 말하였다.
이곳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제자들은 이것을 기억해 두도록 하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나운 것임을.

**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마음 편히 살게 하지 못하게 옥죄는 모든 것이 호랑이보다 사나운 법이다. 회사, 상관, 직무, 세금, 기업환경.. 심지어는 배우자까지도 그런 대상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호랑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孔子過泰山側(공자과태산측) 有婦人哭於墓者而哀(유부인곡어묘자이애)
夫子式而聽之(부자식이청지) 使子路問之曰(사자로문지왈) 子之哭也 壹似重有憂者(자지곡야 일사중유우자.)
而曰(이왈) 然 昔者吾舅死於虎(연 석자오구사어호)
吾夫又死焉 今吾子又死焉(오부우사언 금오자우사언)
夫子曰(부자왈) 何爲不去也(하위불거야).
 無苛政(왈 무가정)
夫子曰(부자왈) 小子識之 苛政猛於虎也(소자식지 가정맹어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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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분류없음2017.07.21 18:20

레드 플래그법(Red Flag Acts, 적기조례)과 원전



법의 규제가 한 산업의 발전에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말 영국에서 시행된 레드 플래그법(Red Flag Act) 혹은 적기조례(赤旗條例)라 불린 기관차량 조례(Locomotive Act)이다. 

이 법은 1865년에 제정 및 시행되어 한 차례완화되는 개정을 거치며 약 35년간 유지되다가 1896년에 폐지된다.


이 법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당시의 사정을 상당 부분 감안하더라도 터무니 없이 그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규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속도는 4mph(6.4km/h)(시내에서는 2mph) 이하이어야 한다.

승무원은 최소 3명(운전자, 화부, 조수)이어야 하며,

조수는 60야드(55m) 앞에서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걸어가며 말이나 마차의 통행을 도와주어야 한다. 조수의 신호에 따라 말이나 마차가 지나갈 때 차는 멈춰야 한다.

- 차량 중량은 14톤을, 차량 폭은 9피트를 넘어서는 아니된다.

-1878년 개정법에서 붉은 깃발은 필요없는 것으로 하고 조수의 위치는 전방 60야드는 20야드로 단축되었지만, 말과 조우하면 차량이 정지하여야 하고,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의 발생은 금지되었다.


왜 이렇게 터무니 없이 과도한 규제가 생겼을까?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차의 출현으로 위태로워진 기존의 마차산업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동차의 출현으로 인해 불안을 느낀 마부 등 마차 산업의 종사자들이 강력하게 로비를 하였고, 그 로비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약 30년간 유지된 이 법은 영국 자동차 산업을 초기 태동기에서부터 철저히 구속하는 전족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로 인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게 되었다

가혹한 규제가 산업의 싹을 애초에 눌러 그 성장을 억제한 결과이다(苛政猛於虎). 



Red Flag Act for controlling cars, picture, image, illustration



레드 플래그법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비록 자동차의 등장이 새로운 탈 것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임이 예측되었다 하더라도,

당시 성업을 이루던 마차산업에서는 운행중인 수많은 말과 마차들, 우수한 마차 제조기술 및 그 관련 종사자 그리고 무엇보다 마차를 모든 수많은 마부들의 고용문제 등을 고려할 때 자동차라는 괴물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며,

그래서 국가의 입장에서도 기존 산업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변화의 충격을 가능한한 완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의 자동차는 증기기관을 이용하였다. 증기기관은 외연기관이므로 물을 끓여 고압의 증기를 발생시키고 그 증기로 터빈을 구동시킨다. 그래서 석탄 등의 고체연료를 싣고 거대한 보일러가 장착되어 증기와 매연을 뿜어내는 흉물스런 모습에다, 가끔 폭발음을 동반하는 작동 소음을 고려하면 끔찍한 괴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괴물스런 초기 자동차가 우아하고 품격있는 마차들이 주행하던 도로에 나섰을 때 마차산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거부감은 작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세상은 끝내 변화하여 마차는 거리에서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자동차가 메우고 있다. 자동차는 마차산업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과 물류의 이동과 교류를 확장시키고 고용을 증대시켰다. 자동차 산업을 먼저 키운 나라가 세계의 경제를 앞서 이끌고 있다.



locomotive Act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에 비추어 우리 전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탈핵과 찬핵으로 논란이 뜨겁다. 찬핵은 레드 플래그법 당시의 마차산업과, 탈핵은 자동차 산업과 각각 유사하다. 

기존 원전산업의 기술과 인력을 보호할 것인가, 시대의 변화를 읽고 신재생에너지의 탈핵으로 갈 것인가.


지금까지 잘 닦아놓은 수준높은 원전기술과 우수한 인력 및 설비가 아깝고, 저렴한 전력 생산 비용도 결코 포기하기 힘든 매력이다. 그래서 원전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극구 탈핵을 반대한다. 이들 찬핵의 논리는 나름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나는 탈핵의 논리에 더 공감한다. 공감의 이유는, 우선 유한한 자원을 이용해왔던 기존의 에너지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태양 등의 무한한 자연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재생에너지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핵발전의 무시무시한 잠재적인 위험 때문이다. 그리고 발전이후에 생성되는 발전부산물을 영구적으로 저장하여 관리하여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과 관리부담을 고려하면 핵에너지는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

미국의 드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이것은 진정 악마의 유혹이다. 어마어마한 치명적인 위험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달달한 유혹 요소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고의 발생확률이 낮다는 둥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사고는 이미 발생한 적이 있고, 발생하였다고 하면 우리는 도저히 달아날 수 없는 철저히 파멸적 상황을 겪게 된다. 

우리 기술이 뛰어나고 우리나라가 지진에 안전하다고들 말하지만, 이미 그 말이 설득력이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탈핵을 추진한 일본과 대만이 다시 원전가동을 시작했거나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당장의 전력수급 차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시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며 그들이 근본적인 탈핵 기조를 변경한 것은 아니다.

일찌기 탈핵의 길을 개척한 독일을 보라. 원전은 절반 이상 감축하였고, 석탄 화력발전도 30% 정도 줄였다.  그럼에도 늘어난 재생에너지로 감소분을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아 주변 국가로 전력을 수출하기도 한다. 우리의 롤모델은 독일이다. 

우리나라의 지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이 현재 상태에서는 많이 부족하고 위태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 흉물스러운 증기자동차로 출발한 자동차 산업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보라. 안전하고 무한한 신재생에너지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훵씬 세련되고 훨씬 경제적인 모습으로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아깝고 힘든만큼 우리는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 세상을 더 빨리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원전은 안전할 때 꺼야 한다"(독일 17인위원회)







** 참조 기사들
- 문 대통령은 앞으로 60여 년 동안 원전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며,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도 전기 요금이 크게 높아질 정도는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 기존 원전을 수명대로 쓰고 신 원전 건설은 중단.

안전 문제에 관한 한 중국에서 원전을 대규모로 짓고 있는 상황에서 인접한 한국만 탈(脫)원전으로 가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 희안한 어불성설의 논리.

핵발전 사고의 원인은 무궁무진.. 눈깜박할 사이에 일어나는 ‘휴먼 에러’

사소한 비닐조각 하나로 일어나는 ‘정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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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