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9.26 '차례와 제사', 이제 변해야 한다.
  2. 2018.09.02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
  3. 2018.09.02 아버지의 여행 소동
분류없음2018.09.26 12:52

'차례와 제사', 이제 변해야 한다.


- 이번 추석을 쇠면서 차례와 제사가 대폭적으로 간소화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당장 적용하기 힘들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점진적으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 종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해도 '봉제사(奉祭祀)'이다. 우리집은 대종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꽉채운 4대 봉제사를 지켜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2010년)에는 사실상 5대로 늘었고, 할머니 한 분의 제사를 작은집으로 덜어갔는 데도 총 11위가 된다. 그러니 현재 기제사 11번과 명절 차례 2번이 집안의 가장 중요하고 큰 행사이다.

아버지는 조상을 모시는 산소 돌보기와 제사의 의무에 대해 매우 완고하시다. 그래서 지금껏 몇 번 운을 뗐다가 호되게 당하고 나서는 제사 간소화에 대해서는 아예 금기시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생각은 깊이 해두어야겠다.

- 제사를 분당의 내게로 옮긴지 3년째다. 그 동안 고향 김해에서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며 제사와 명절 차례를 지내왔다. 제수씨가 근 20년을 군말없이 어른 수발과 봉제사를 해온 데 대해 나는 장손으로서 무한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평생 어깨에 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죄스런 마음으로 가급적이면 빠짐없이 참석하고 아내가 음식을 분당에서 해서 갖다 나르기까지도 하면서 나름으로 노력했지만, 그건 제수씨와 동생이 감내해야 하는 정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사를 옮기니 그런 심적 부담을 덜 수 있어 너무도 마음 편하고 좋다. 그런데 적잖은 문제가 있다. 우선 동생 식구들이 거의 올라오지 못하니 제관이 없고, 제관이 없으니 아버지가 올라오셔도 집사람까지 달랑 네 식구이다. 거기다 아들은 기숙사에 있어서 1년에 한두번쯤만 운좋으면 참례가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내가 지내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나도 창원과 울산의 지사들을 오가며 관리해야 하니 기일 맞추기가 쉽지 않고, 아흔이 넘으신 아버지가 어제까지나 참례하실 수 있으리라 보장 못하니, 언젠가 아내 혼자서 썰렁하니 제사를 지내고 있어야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냉장고는 항상 제사 음식으로 꽉 차있다. 상당 부분 내려보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남아 쌓이기 마련이다. 제사가 다가오면 냉장고 비우기 비상이 걸리니, 음식 처리가 고역이다. 

그리고 제사 음식 만드는 일도 그렇다. 솔직히 다 공감하지만, 제수 준비라는 게 그저 단순노동이 아닌가. 그나마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함께'라는 것 때문에 수고가 다소 가벼워 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꾸역꾸역하게 되면 오히려 힘은 몇 배 더 드는 법이다. 불경스럽다 할까봐 아내가 감히 겉으로 드러내어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그 속내를 어찌 모르겠나. 

더 문제는 '홀로 제수 준비'가 상당 기간 더 가야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친구들 여럿이 이미 손자를 봤을 정도인 환갑을 앞둔 어중간한 할마시다. 아들이 이제 고3이니 며느리가 들어올려면 아직 10년은 더 있어야 할 거다. 설사 며느리가 온다고 해도 요즘 애들이 국내에 살지 외국에 살지 모를 일 아닌가. 그러니 내가 우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기제사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볼 일이다.
기제사는 조상님들의 돌아가심을 기리는 일이니 결코 가벼이 손을 대서는 안된다. 지금 11번의 기제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9번으로 줄어든다. 이를 1년에 두어번 정도로 단촐하게 지내고, 제사가 없는 기일에는 우리 나름의 간단한 의식을 배려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제수도 대폭 줄여 안식구들의 노력과 스트레스 및 음식의 낭비도 줄일 필요가 있다.

- '명절 차례'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명절 차례'라는 게 무엇인가? '명절'은 그냥 관습이 만든 그저 '좋은 날'에 불과하다. 이런 날 별난 음식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그런 음식을 보니 조상이 생각나고 죄송스러워서 예를 차렸을 것이다. 그 예가 세월이 흐르면서 덧칠되어 지금의 과도히 무거운 '차례'로 정착된 것이다. 어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과거 러시아에서 멀건 잔디밭에 80년 동안 초병을 세워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좋은 날' 좀더 정성들여 만든 '후손들이 먹을 음식'을 조상님들께 먼저 선보이는 것이 '차례'임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니 '조상님들만 드실 음식'을 차리는 것은 차례의 본래 의미를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우선 각 세대별로 상을 차리는 것을 단일 상으로 줄여야 한다. 이미 많은 집안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집에서만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조상들에게 우리가 먹을 음식을 함께 즐기자는 의미이니만큼, 하나의 상에 조상들을 다 모셔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음식을 줄여야 한다. 특히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전은 생략하여야 한다. 전을 쓰던 풍습은 절에서 나온 것이다. 전은 제사상의 필수품이 아니라 선택품이다. 굳이 그 많은 양의 전붙이를 굽는데 고급 인력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생선과 과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먹을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상차리기 위해 장만할 필요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차례상의 표준은 없다. 우리가 먹을 음식을 조상님과 함께 잠시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고, 그에 따라 상을 차리면 된다.

- 명절에는 더 중요한 일을 하여야 한다.

명절은 국가가 정해준 휴가이다. 전국민이 동시에 쉬는 날이니, 평소 만나기 힘든 가족들이 짧든 길든 함께 지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시간들이다.

그레서 제사도 그렇지만 특히 명절은 소속원들에게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기다려지는 반가운 만남이 있고, 행복한 대화가 있고, 충만한 재충전이 있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오랫만에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어른들을 기리면서 애들이 자라는 모습을 격려하고 서로의 삶을 축복해주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 산소에 가서 여러가지 꽃나무를 심었다.

다음 주가 되면 어머니가 가신지 만 1년이 되기에, 아버지는 묘목을 미리 준비해두시고는 날을 잡아 우리 형제들을 불러 따르게 하셨다.

묘목은 거의 30포기 정도에 종류도 참 다양하게도 골라 오셨다. 산수유, 앵두, 석류, 대추나무, 철쭉 등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싶으시단다.

앵두나무는 벌써 몽우리가 벌어져 있으니, 내년부터 해마다 이맘 때 어머니 기일(음력 3월 초이틀)이 다가오면 앙증맞은 앵두꽃이 만개하게 될거다. 앵두꽃 옆에는 참꽃과 개나리도 함께 필테고, 몇 년 지나면 산수유도 껑충히 한몫 거들게 될 거니까, 그 땐 환상적인 꽃의 오케스트라를 연출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초봄 꽃들의 향연이 조금 시들해지고 어머니 생신(음력 4월 11일)이 다가올 때 쯤이면 아마도 철쭉과 석류꽃이 바통을 이어서 한동안 주위의 녹음과 어우러져 어머니 산소를 장식해 주게 되겠지.

아버지는 나무들 사이에 국화를 심으시겠다고 하신다. 당연히 가을의 외로움을 덜어주시려는 배려이신 거지.

옛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으셨다.
특히 지지리도 정도 없는 양반이라고.. 사실 좀 그렇긴 하셨다. 대부분의 경상도 남자가 그러하듯..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머니의 투정은 맞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누우신 후, 동생 내외가 모시고 살면서 무척이나 고생도 하고 정성을 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방의 한 침대에서 생활하시는 아버지 당신께서 정작 직접 하셨던 긴 병치레의 온갖 궃은 수발은 어느 자식도 대신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 이토록 이 산소를 공단같이 꾸미시는 애틋한 정성을 보면 누가 정이 없는 양반이라 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어린 동생들을 사실상 키우시다가, 7남매의 장남이신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셔서, 대가족을 수발하며 우리 5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5척 단구의 갸날픈 체구의 약한 몸으로 작지 않은 규모의 농가 살림을 단손으로 감당해내셨지. 어린 우리가 봐도 너무도 눈물겹게 힘든 일생을 보내셨다. 그런데 자식들이 그나마 세상에 나가서 사람 행세를 하는 듯할 즈음에 덜컥 쓰러지셔서 근 7~8년 이상을 자리보전하시다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쩌면 어머니는 자리에 누우신 이후의 기간이 오히려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때였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벽창호 같은 아버지께서 24시간 대소변 수발을 포함해서 지극 정성으로 수발을 들어주시고, 온갖 역정이며 투정도 조금도 거리껴하시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젊을 때 무심했던 남편에게 제대로 충분히 보복을 하시고 덤으로 보상을 받으신 셈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이후에 산소를 저토록 정성으로 꽃단장을 해드리고 계시니, 저 세상에 계신 어머니의 기분은 어떠하실까.

아버지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항상 듣던 그 말씀을 섞어서 심계를 드러내 놓으신다.

“범을 청치 말고 숲을 짙게 하라는 말처럼,
앵두가 열리고 석류가 익으면
자손들에게 오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고 싶어지지 않겠나”

[201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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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버지의 여행 소동


아버지가 혼자서 여행을 가시겠다고 한다.
동생들이 말리다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그 말을 듣고 부리나케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곧 아흔이 되실 상노인이 우찌 그리 가당찮은 생각을 하셨을까.


어딜 그렇게 가시고 싶습니꺼?
- 새만금도 들러보고 청주에도 가보고,
서울에 너그 집에 가서도 며칠 있다 올란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더.
- 안된다. 니하고 댕기믄 싸워싸서 재미엄따.
그라믄 애미하고 다니시지예.
- 며느리하고 다녀도 재미엄따.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다니고 싶다.

밥은 우짜고예.
- 컵라면 사먹으면 된다. 
잠은요?
- 여인숙에 가서 자믄 되지.
요즘 여인숙 없습니더.
- 그라믄 유곽에라도 가서 잘끼다.
유곽이라는 거 없어진지 수십년도 더 됐습니더.
- 요즘 날씨에는 한데서 자도 된다.


기가 찬다. 
요지부동이시다. 내일 아침부터 보초를 서야 할 판이다.
반쯤 통사정을 하고 반쯤 윽박질러서 일단은 고집을 약간 돌려놓은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현재 계신 위치를 모니터링해야 할 것 같다.

필경 우리 자식들에게 뭔가 서운한 게 많이 쌓여 있으신 것 같은데,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않으시니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아니면 앞만 보고 달려오신 당신의 삶에서 허무함을 느끼신 것일까?


오로지 가족들이 굶지 않게 하고 남들 만큼이라도 가르치고 입히려고 온몸을 다바쳐 뼈빠지게 희생하며 살아오신 삶이다. 거기다 별 내세울 거 없는 집안이지만 그래도 나름 물려받은 의무를 다하기 위해 봉제사와 선산 돌보기를 거의 종교 수준으로 수행해오지 않으셨던가. 스스로를 버리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살아온 그 한 평생을 돌아보면 이 연세에 어찌 아릿한 회한이 없으랴. 

가만 생각하니.. 지금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워낙 실질(?)을 추구하시는 분이라 비생산적인 것을 몹시도 싫어하셨다.
평생 농사일을 해오신 탓에 허투루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버지 앞에서는 음악, 운동, 여행, 외식 등과 같은 말은 금기 단어이다. 지금도 손자들이 학교 생활로 악기를 들고 다니면, 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니며 음악을 하였던 집안의 한 아재가 무능과 게으름으로 온 집안을 망하게 만든 사례를 들며, 당장이라도 악기를 부셔버릴 듯 흥분하신다. 그 아재의 이야기는 자식 대와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십 수백 번도 더 반복하셨다. 그리고 가벼운 운동이라도 한다고 하면 우리 논이나 한바퀴 둘러보고 오라고 호통을 치시곤 했었다.

그러던 분이 거동이 불편해지고 생각이 흐려져 가는 이제에 와서 세상 구경을 하시겠단다. 못해본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어 조급증을 내시는 듯하다.
그래.. 이제부터 우짜든지 시간을 내서 좀 모시고 다녀야겠다고 반성과 다짐을 한다. 하지만 굳이 혼자 다니시겠다고 저리 고집을 부리시니 어쩐다.


그런데,아버지!

저도 정말이지.. 혼자서 유람 좀 다녀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아버지도 저와 같은 생각이시겠지요?

그나저나 당장 어떻게 해봐야 하나..

[2015.09. 02. 페이스북 포스팅]

<2011년 1월17일, 외손녀의 안내로 일본 여행 모시고 갈 때 공항에서 찍은 것>


**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우여곡절 끝에 분당의 우리 집으로 안전하게 모심으로써 여행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김해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올라 오셔서, 며칠 동안 서울 인근의 구경도 하고 지내시다가 내려가셨다. 며칠 지나보니 모든 식구들이 바삐 움직이니 어쩔 수 없이 홀로 계셔야 하기도 하고, 출입하기도 어려운 도시의 아파트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영 체질에 맞지 않으신 거다. 고향에 내려가신 후 딸네들과 멀고 가까운 곳을 몇 군데 여행 다니시긴 하셨는데, 최근에는 여행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으신다. 마음이 안정되신 건지 체력이 떨어지신 건지.. 여하튼 내게는 여전히 마음의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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