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1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


비싼 재료의 화폐(양화)와 싼 재료의 화폐(악화)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함께 유통되면 양화는 사라지고 악화만이 통용된다는 말이다. 
이를 그레샴의 법칙(
Gresham's law)이라 부른다. 16세기 영국의 재무관 토마스 그레샴이 주장한 화폐유통의 법칙이다. 사람들은 실질 가치가 높은 좋은 돈 양화는 내놓지 않고 소장하고, 가치가 낮은 돈은 남에게 줄 때 사용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 구슬따먹기를 해본 사람은 이 말을 확실히 이해한다. 내기를 하는 과정에 불가피하게 구슬을 주고받게 된다. 이때 항상 가급적이면 헌 구슬을 내놓고 새 구슬은 가장 마지막까지 보유하고자 노력하기 마련이다. 이게 그레샴 법칙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다임(Dime) 은화가 유통되다가 화폐의 수요가 늘어 1965년에 동일한 다임의 구리로 만든 동화를 발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은화는 시중에서 사라져버리고 동화만이 유통되었다. 사람들이 은화는 은닉해두고 동화만으로 거래를 하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모임에서 회비가 잘 걷혀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 누군가가 그 돈으로 금뱃지를 만들어 회원들이 부착하고 다니자는 제안을 하였다. 금뱃지가 회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높여줄 것으로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하여 뱃지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비싼 금으로 만든 뱃지를 분실하면 큰 손해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좋은 대책이 나왔다. 금색의 모조 뱃지를 개당 몇 천원에 만들어 한두 개씩 나누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뱃지는 아내가 어딘가에 잘 보관하고 있고, 나는 모조 뱃지만을 달고 다니고 있었다.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싼 모조 뱃지가 비싼 금뱃지를 쫒아낸 것이다.



#2 

주막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


송나라 사람 중에 술장사가 있었다. 

그릇을 매우 청결하게 하고, 팻말을 아주 길게 달아놓았지만, 

술이 쉬도록 팔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공의 개가 사나워, 사람들이 그릇을 들고 들어가 공의 술을 사려하면 
개가 나와 물어버립니다. 이것이 술이 시도록 팔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_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 右 



주막집 문을 지키는 개가 사나우면 손님이 떨어지고, 손님이 없으니 술이 쉴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담당자의 갑질이나 못된 행세가 협력사나 고객을 쫒는다. 우리는 자주 다니던 식당이나 이발관을 아주 작은 불만 때문에 발길을 쉽게 끊지 않았던가. 이러한 회사 내의 악화나 사나운 개는 다른 화폐가 아닌 대체불가능한 대상인 고객 등을 쫒아낸다는 점에서 화폐의 경우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

기업의 내부 사람들끼리에도 사나운 개가 있다. '퇴준생'이라는 신조어는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 직장인이라는 뜻이다. 직장인은 항상 사표를 가슴에 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퇴사자들의 퇴사 이유를 분석해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상관과의 부조화'로서 이직 사유의 40% 이상을 점한다. 나도 젊을 때 몇 번 직장을 옮겨본 경험이 있다. 모두 상관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업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사나운 개가 설치고 다니면서 전도 유망한 젊은 인재들을 쫒아내고 있다. 물론 본인들은 자신이 사납다거나 자기 때문에 아까운 젊은이가 상처를 입고 떠났는지 모른다. 그저 요즘 애들의 얕은 참을성만 탓한다.

기업의 리더들이 기억하여야 할 말이 있다. 리더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말 잘듣는 부하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또 다른 리더로 키워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3

디지털 화폐는 악화인가 양화인가?


악화와 양화라는 말이 나온 김에, 요즘 뜨고 있는 디지털 화폐(암호화폐 혹은 가상화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디지털 화폐가 현재의 실물 화폐 시스템을 대체하여 과연 미래의 주류 통화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디지털화폐가 양화라면, 그레샴의 법칙에 따라, 다른 악화에 밀려 통용화폐의 지위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고, 악화라면 통용화폐의 안방 자리를 쟁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화폐는 현실의 물리세계가 아닌 오로지 가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며, 그것을 만드는 들어가는 비용은 제로이다. 그 가치는 전적으로 사람의 인식과 신뢰에 의해서만 유지되며, 그 경제적 의미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없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여 여러가지 고도의 기술로 제작된 지폐나 동전에 비하면 디지털 화폐는 명백히 악화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만약 실물 화폐와 디지털 화폐가 동시에 통용된다면 실물 화폐는 사람들의 소장물로 되어 유통에서 사라지고 디지털 화폐만이 통용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바로 디지털 화폐에 뛰어드는 것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나와있는 디지털 화폐의 종류는 2천종이 넘는다. 그 중에 살아남는 것은 손꼽을 몇가지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2018. 3. 22>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새해가 밝았다. 

환갑을 맞는 새해 아침이다. 그런데도 보통 날처럼 그다지 설렘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마음먹은 각오도 없고 야무지게 짠 계획도 없다. 나이 듦에 대한 회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맨숭히 새해를 맞아도 되나 싶어 책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본다. 일단 올해 우리 조직과 나를 이끌 쌈박한 가르침 모토는 하나 정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어떻게 살아보자는 그럴싸한 한마디를 생각해 둬야지.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다. 60이라는 숫자 때문인가. 온통 황금 개띠 해라고 우리 나이의 갑자가 돌아온 해라고 난리다. 친구들의 카톡 내용도 그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환갑이 된 것을 자축하자는 의미는 아닐테고, 그만큼 나이가 들어 늙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호들갑이겠지.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은퇴하여 심심하게 보내고 있다. 좀 그나마 다부진 친구들은 당구나 등산 등에 나름의 열정을 쏟고 지낸다. 개인적으로는 늙지 않은 척 발버둥을 치고 지내지만 끌어 모아놓으면 영락없는 노털들이다. 머리털은 휑하고 얼굴살과 눈꼬리가 늘어져 있고 배는 두툼하고 움직임이 둔하니 평균적인 모습으로는 도저히 그 나이 때를 숨길 수 없다. 거기다 대화의 주제가 꼴통스런 정치관으로 넘어가고 때론 볼촉맞은 논쟁까지 덧대지면 감당할 수 없는 노추를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이 나이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친구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도전하는 것을 거부할 때 쓰는 정말 김빠지게 하는 언어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타박을 놓기도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러다 결국은 공감과 소통이 끊길테고 좀더 지나면 만남마저 소원해지겠지. 

언젠가 모임에서 하도 나이 타령을 해대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나이는 누가 강제로 떠먹인 게 아니니 억울할 것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이 힘든 생존 환경을 거쳐오면서 살아남으려고 치열히 노력을 하여 쟁취한 게 이 나이 아니냐. 이 나이는 여기에 이르지 못하고 떠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지금껏 죽기살기로 달려온 것은 이 나이에 이르기 위한 것 아닌가? 우리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온 거다!" 그리고 나는 한 동안 "나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라는 슬로건을 메신저 등에 쓰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그런데 나는 정말 늙었는가? 최근 내가 실제로 늙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가 결코 젊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솔직히 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건강은 오히려 갈수록 좋아지는 듯하다. 예전에 상시로 달고 다니던 감기에 걸리지 않은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술 많이 마시던 때 항상 조심스러웠던 과민성 대장증세나 장염도 최근엔 거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머리숱이 보기 딱할 정도로 많이 줄었고 치아를 1년에 하나 정도 인공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것이 노화의 증거이다. 체력도 더 좋아지는 면이 있다. 팔굽혀펴기는 한번에 30개 정도는 쉽게 하고 있고 그 수가 점점 늘어간다. 40대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골프 스코어도 갈수록 좋아지고 안정적이다. 한 두 번 연습하기만 하면 드라이버 거리도 예전보다 더 나간다. 다만 달리는 것은 좀 힘들다. 하지만 달리기도 좀 시간을 두고 연습하기만 한다면 상당한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다. 이런 방정맞은 소리 하다가 어느 날 덜컥 드러누워버릴 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자랑해보고 싶다.

그런데 내게 정작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영역은 지적 능력이다. 나 스스로도 나의 엄청난 학습 능력과 집중력에 놀라고 있다. 매월 한 번씩 하는 조찬세미나가 벌써 28번을 넘겼다. 두어 번 되풀이 강의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때그때 강의안을 새로이 만들었다. 강의 내용에는 내 전문분야인 특허전략, 영업비밀 보호, 특허경영, 경고장 대응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 있고, 창의력의 비밀, 스타트업 관련 강의, 계약합시다, 4차 산업혁명 등과 같은 상당한 과외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내가 좀 무모하게 도전했던 영역은 인문학 강의였다. 사실은 내가 좀 깊이 공부하고 싶어 덤벼들었던 주제들인데, 어떤 땐 십수권의 책을 읽기도 하고, 인터넷 등에서 수많은 자료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무모하게 도전을 저질렀던 강의 타이틀이 갈등관리,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 맹상군,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손자병법 등이다. 특히 손자병법은 전문을 그대로 재번역하였고 그것을 6번에 걸쳐 나누어 축차 강의를 하였다. 새해에는 협상과 한비자를 좀더 깊이 공부하고,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소설에도 손을 대봐야 겠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늙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젊어지고 있다고.
나는 지금도 체력과 지력이 성장하고 있고, 아직도 수많은 도전 꺼리를 가지고 있다. 그 도전 꺼리를 차근차근 정복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것이다. 내게 인생의 정점 즉 최고의 젊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젊음의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당연히 나는 아직 어리거나 젊은거야. 언젠가 그 정점을 경험하고 나면 신체적 지적 열화를 느끼게 될테고 그 때 가서야 비로소 늙었다고 혹은 늙어간다고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아직 충분히 젊어지지 못했다.  

나는 아직 더 젊어져야 한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나는 아직 도전할 꺼리가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점점더 성숙된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버지와 산소


말 그대로 온 삭신이 쑤신다.

그저께 아버지 호출로 산소의 잡초를 제거하느라 하루를 사역하였더니 그 후유증이다. 평소 안하던 노동에 안쓰던 근육을 썼으니 편할 턱이 없다. 앉아도 누워도 도통 편하질 않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괜찮으시단다. 함께 일한 90세 노인보다 못한 내가 부끄럽다.

아버지의 산소관리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시다.
어머니 말씀대로 산소 잔디를 그야말로 공단 같이 가꾸신다. 15~6년 전에 내가 충청도 웅천에까지 가서 석물을 해와서 모든 산소를 일괄적으로 정비하면서, 그 때 잔디를 공들여 깔았었는데.. 그 후로 잡초 하나 없이 유지되어 왔다. 그렇게 유지된 건 순전히 아버지의 까탈스런 관리 덕이다.

산소에 가보니 잡초가 적잖이 나 있다. 잎넓은 풀들은 시들어있고
군데군데 마른 풀더미가 있는 걸 보니 다녀가신지 1주일도 안된
거 같다. 여쭤보니 손수 제초제를 치셨단다. 분무기를 메고 와서.. ㅠㅠ..

아버지의 이런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가 물려받으면 이처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알고 게실텐데.. 이 못미더운 아들에게 어찌 물려주려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심히 설명해주신다. 황새배기(억새 종류)는 뿌리가 깊고 넓어서 뿌리채 제거가 안된다.. 잎사귀를 기울여 근사미(제초제 일종)에 담그면 뿌리채 죽는다.. 왕포아풀 등 씨번식이 강한 것은 수시로 한달에 두어번 와서 뽑아주는 방법 밖에 없다.. 조금만 지체되면 온통 그 잡초들 천지가 된다..

내가 보기엔 모두 산소를 푸르게 덮어주고 있는 푸른 풀인데.. 꼭
그렇게 인종 차별 아니 초종 차별을 해야할까 싶다. 인간의 욕심이 죄없는 풀을 박해하고 있지나 않나 생각하면서도.. 초종 차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러다 한 가지 가르침을 주신다.
"강한 놈이 사실은 가장 약한 기라. 황새배기는 뿌리가 질기고 잘 죽지 않지만 웃자라서 드러나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될 수 밖에 없는 기라.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걱정은 걱정이다. 말없이 일은 했지만, 속으로는 머잖아
내 손으로 산소를 정리해야할 것이라는 불경스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대의 애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지도 모르니..

(2017.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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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버지의 돈을 훔친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70년대 초반인 당시에는 용돈이라는 것을 주고받고 할 그런 형편들이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는 주변에서 누구나 인정해줄 정도로 정말 야물게 안 쓰고 안 입고 모아서 식구들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림을 일구신 분이다. 그래서 적어도 경제권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오로지 쥐고 계셨다.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식구는 돈을 써야 할 때마다 매번 힘들게 아버지를 설득하여야 했다. 그런 분에게 용돈이라는 말은 손톱도 들어가지 않을 턱도 없는 말이다.

우리 논에서 나온 비닐 등 폐 농자재를 고물상에 팔기도 해서 어느 정도 푼돈을 쓰기도 했지만, 중학교를 들어가 무협지와 만화에 재미를 붙이면서 턱없이 부족한 용돈에 허덕이고 있었다.


안방에는 아버지의 궤짝이 있었다. 가로 3자 높이 2자 정도 크기에 한 때는 자개 장식이 있었을 것 같은 낡은 옻칠 궤짝으로, 집안일에 관련되는 문서들과 돈을 보관해두는 곳이다. 당시에는 은행을 잘 이용하지 않았으니, 그 궤짝이 우리 집의 금고인 셈이다. 이 궤짝에는 주먹만한 다이얼 자물쇠가 달려있는데, 전후로 왔다갔다 돌리며 번호를 맞추는 것이라 그 비밀번호는 알아내질 못했다. 그런데 문짝이 경첩에 의해 열리는데, 이 경첩이 낡아서 간당간당하는 것이다. 그 문짝 틈새 사이로 납작한 드라이버를 넣어 슬쩍 제치니 경첩이 떨어지며 문짝이 열린다.

지폐다발이 눈에 보인다. 아마 천 원짜리였겠지. 거기서 한 장을 빼냈다. 그리고 다시 문짝을 밀어 넣으니 별 표시가 남지 않고 원상복구가 되었다.

난 그 돈으로 상당 기간 적어도 몇 달을 정말 알차게 풍족히(?) 썼다. 가방 한쪽을 무협지로 가득 채워서 빌려오면 밤새 읽고 아침에 학교가면서 반납하고, 저녁에는 또 빌려오고.. 그러다 그 돈이 떨어지자 다시 범행을 저질러야 할 운명의 때가 온 것이다.


거사하기로 마음먹은 날. 주위를 나름대로 살펴본 후 드라이버를 경첩에 밀어 넣고 문짝을 여는 순간, 우찌 이런 일이..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셨다. 어머니도 뒤이어서..

온 세상이 노랗게 변한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질지, 벼락이 칠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바닥만 보고 멍청히 서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원 같은 짧은 침묵이 지나고, 결국 어머니가 입을 여신다. “야~야~ 니가 와이라노. 나가봐라.”그게 전부였다. 


아버지의 침묵, 그것은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다 무서운 질책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아무 말을 더 하지 않았다.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시 애들에 대한 폭력은 일상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런데 아버지는 누구에게든 전혀 폭력을 쓰지 않으셨다. 아니 단 한번 있다. 고양이 힘도 빌려야 한다는 그 바쁜 모심기철에 무엇 때문인지 옆에 졸졸 따라다니며 부아를 채운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참을 참고 견디시다가 참다못해 내 귀퉁배기를 한 대 올리셨다. 그게 유일한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의 추억이다.

당시 우리 동네의 이웃들은 다들 형편이 딱했다. 먹고살기 어려우면 가정 폭력도 많은 법이니, 주위 또래 동무들은 그 부모들에게 늘상 맞고 자랐다. 그들이 맞아야 되는 주된 이유는 거짓말, 도둑질, 싸움 등과 같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나쁜 짓이다. 그런 교화를 충분히 많이 받고 자란 그 친구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길로 빠져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의 어른으로 성장했다.


가끔 그 사건을 가만히 생각한다.

그때 아버지는 왜 아무 말도 안하셨을까? 자식에 대한 교육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서는 아니 되는 일인데. 나는 상당한 벌을 에상하고 있었었다. 어떤 벌도 달게 받았어야 한다.

내 아들이 그런 짓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둥 최소한의 잔소리라도 좀 했을 거 같은데.

휘어진 나무를 초기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따끔하게 매를 들어 벌을 주었다면, 나는 더 착하고 더 훌륭한 인간이 되었을까? 내 볼촉맞은 성격을 생각한다면 필경 더 좋아지지는 않았을 거 같기는 하다.


아버지에게 감사하여야 할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고마움 중에 이 일이 내게는 가장 고마운 일이다. 돈을 훔친 짓을 그냥 말없이 지나쳐주신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나를 ‘용서’하셨고, ‘용서’의 방법은 아무 말도 하시지 않는 것이었다. “침묵에 의한 용서”를 택하신 것이다.

사실 그 뒤로도 용서받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침묵으로 용서를 대신하셨다. 오히려 작은 잘못은 짜증이 날 정도로 반복해서 질책을 하셨지만, 정작 큰 잘못에는 아무 말없이 지나치셨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간의 언어도 규정하게 되면, 그 시점에서부터 언어에 의해 구속되게 된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버지가 내가 한 짓으로 벌을 주거나 교육하고자 하는 순간, 나는 그 때부터 명백히 돈을 훔친 도둑놈이 된다. 그리고 내게는 그리고 아버지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는 도둑질, 도둑놈이라는 관념이 영원히 각인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도둑의 개념이 내게 규정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도둑’이라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서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其恕乎].”(논어 위령공편)라고 말하였다. ‘서(恕)’는 ‘용서’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40중반의 그 젊은 나이에 공자의 깨달음을 몸으로 실천하신 것이다.

용서의 진정한 의미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어떤 논리나 지식으로 용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그저 본능적으로 침묵하고 잊어주도록 행동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용서는 진정 인간이 신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용서는 결국 사랑이다.

사랑 없는 용서가 있을 수 없고, 용서 없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용서는 사랑의 마지막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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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초장왕 번희樊姬의 지혜


번희는 초장왕의 부인이다. 장왕이 즉위하여 사냥을 즐겼다. 번희가 간했음에도 그치지 않자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 왕은 잘못을 바로잡고 정사에 성실히 임했다.

왕이 아침 일찍 조정에 들어 늦게 마치니, 번희가 전각 아래에 내려가 맞으며 말하기를 어찌 이렇게 늦게야 마치셨습니까? 시장하고 피로하시지 않으신가요?”하니, 왕은 어진 사람들과 더불어 말하면 시장하거나 힘들지 않소.”하였다.

번희는, “왕께서 말씀하시는 어진 이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니, 왕은 우구(虞丘)라고 답하자,

번희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왕은 번희가 웃는 것은 무슨 뜻이오?”하자,우구가 어질다고 하시니 어진 이일지는 모르지만, 충신은 아닙니다.”그 무슨 말이오?” 하니 번희가 답한다.

 

첩이 왕의 수건과 빗(巾櫛 건즐)을 잡은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정나라와 위나라로 사람을 보내 미인을 구하여 왕에게 바쳐, 지금 첩보다 어진 이가 둘이고 저와 비슷한 사람이 일곱이나 됩니다. 첩이 어찌 왕의 총애를 홀로 차지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첩은 당상(堂上)에 여자를 여럿 두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능력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사사로운 질투심으로 공사를 그르칠 수는 없습니다. 왕께서 그 사람들의 능력을 잘보고 아시길 바랄 뿐입니다.

지금 우구는 초의 재상이 된지 1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천거한 사람들은 자제가 아니면 그 집안 형제였습니다. 어진 이를 추천하였다거나 어리석은 이를 물리쳤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군주의 지혜를 가리는 것이며 어진 이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어진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천거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충이며, 어진 이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첩이 웃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왕은 기뻐하였다. 다음날 왕은 번희의 말을 우구에게 들려주니, 우구는 자리를 피하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물러나면서 사람을 시켜 손숙오를 불러들여 그를 추천하였고, 왕은 손숙오를 재상으로 삼으니, 그가 초나라를 다스린 지 3년이 되어 장왕을 패자로 만들었다.

초나라 사서에서는 장왕이 패자가 된 것은 번희의 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楚莊樊姬

 

樊姬楚莊王之夫人也莊王即位好狩獵樊姬諫不止乃不食禽獸之肉王改過勤於政事王嘗聽朝罷晏姬下殿迎曰:「何罷晏也得無飢倦乎?」王曰:「與賢者語不知飢倦也。」姬曰:「王之所謂賢者何也?」:「虞丘子也。」姬掩口而笑王曰:「姬之所笑何也?」:「虞丘子賢則賢矣未忠也。」王曰:「何謂也?」對曰

妾執巾櫛十一年遣人之鄭衛求美人進於王今賢於妾者二人同列者七人妾豈不欲擅王之愛寵哉妾聞堂上兼女所以觀人能也。』 妾不能以私蔽公欲王多見知人能也今虞丘子相楚十餘年所薦非子弟則族昆弟未聞進賢退不肖是蔽君而塞賢路知賢不進是不忠不知其賢是不智也妾之所笑不亦可乎!」王悅明日王以姬言告虞丘子丘子避席不知所對於是避舍使人迎孫叔敖而進之王以為令尹治楚三年而莊王以霸楚史書曰:「莊王之霸樊姬之力也。」_ 열녀전

열녀전

번역 http://blog.naver.com/huim820/40062872630

원문 http://www.guoxue123.cn/shibu/0201/01lnz/001.htm



() : 멋대로 하다. 차지하다.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이름이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다. ‘난설헌은 스스로 지은 호다. ‘초희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의 지혜로운 아내 번희(樊姬)를 뜻하며 경번도 번희를 사모한다는 의미다. 아마도 번희처럼 남편을 지혜롭게 내조하라는 권고를 담았으나 난설헌은 다른 길을 걸어갔다."

대문장가 허엽(許曄)의 딸이자 허봉(許篈허균(許筠)과 남매 사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93133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