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商鞅)의 상군서(商君書) 중에서


1.  통치 수단 : 법, 믿음, 권력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데에는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가 법()이고,
둘째가 믿음(信)이며,
셋째가 권력(權)이다.
()은 군신(君臣)이 함께 지키는 것이고,
믿음(信)은 군신(君臣)이 함께 세우는 것이며,
권력(權)은 군주(君)가 홀로 다스리는 것이다.

國之所以治者三
一曰 , 曰 , 曰 
法者 君臣之所共操也
信者 君臣之所共立也
權者 君之所獨制也.



2. 오늘에 머물러 있으면 성장할 수 없다.

지혜로운 자는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옛것을 본받으면 시대에 뒤쳐지고,
오늘에 머물러 있으면 기세를 펼치지 못한다.

聖人 不法古不脩今法古則後於時脩今則塞於勢.

 


3. 법치의 요체는 상벌이다.

포상은 문(文)이고,
형벌은 무(武)이다.
문무(文武)는 법(法)의 요체이다.

凡賞者 文也. 刑者 武也. 文武者法之約也.


형벌은 힘을 낳고,
힘은 강함을 낳고,
강함은 위세를 낳고,
위세는 덕을 낳으니,
덕은 형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형벌이 많으면 상이 무거워지고,
상이 적으면 형벌이 무거워진다.

生力力生彊彊生威威生悳悳生於刑故刑多則賞重賞少則刑重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형벌이 많고 상이 적다.
어지러운 나라는 상이 많고 형벌이 적다.
그래서 강한 나라는 형벌이 아홉이면 상이 하나이고,
약한 나라는 상이 아홉이면 형벌이 하나이다.

治國刑多而賞少 亂國賞多而刑少 故王者刑九而賞一 削國賞九而刑一


4. 스스로를 믿는 자 천하를 얻는다

천하를 믿는 자는
천하의 버림을 받고
,
스스로를 믿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
.
천하를 얻는 자는
먼저 스스로를 얻은 자이고
,
강한 적을 이길 수 있는 자는
먼저 스스로를 이긴 자이다
.

恃天下者 天下去之, 自恃者 得天下.
得天下者 先自得者也. 能勝彊敵者, 先自勝者也.



5. 고르게 잘 살게 하라.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가난한 자를 더 잘 살게 하고
부유한 자를 덜 잘 살게할 수 있으면,
국력이 커지고 국력이 커지게 한 자가 왕자가 된다.

治國能令 貧者富 富者貧則國多力多力者王.


6. 부국과 강병을 도모하라

나라는 농전(農戰)에 의해서 평안하고
군주는 농전(農戰)에 의해 존귀하게 된다.

國待農戰而安主待農戰而尊

** 농전(農戰) : 백성들이 평시에는 농업에 종사하고 전시에는 군인이 되는 시스템



7. 적과 달리 행동하라

군대는 적이 감히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면 강해지고,

 전쟁은 적이 수치스러워하는 일을 하면 유리해진다.

兵行敵所不敢行社興敵所差爲.



 8. 승패에 의연하라

왕자의 군대는 승리하여도 교만하지 않고,
패배하여도 원망하지 않는다.
승리해도 교만하지 않는 것은 전술에 밝기 때문이고,
패배해도 원망하지 않는 것은 실패한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王者之兵勝而不驕敗而不怨勝而不驕者術明也敗而不怨者知所失也.



** 상군(商君, 鞅, ?~BC338) 

위()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위앙() 또는 공손앙()이라고도 불렸다. 위() 재상 공손좌() 문하에서 식객 생활. 공손좌는 위 혜왕()에게 추천하였으나 발탁되지 못하였다.

진효공(孝公, BC 381년 ~ BC 338년)의 초현령()에 응하여 진으로 가서, 패업의 길을 유세하여 좌서장()으로서 내정개혁의 전권을 부여받음. B.C.356년과 B.C.350년 2차에 걸친 변법()을 추진하여 진나라의 부국강병을 달성. 지나친 가혹한 정책으로 효공() 사후 효혜왕()이 즉위하자 탄핵을 받아 도주하던 중, 자신이 수립해놓은 빈틈없는 치안 체제에 걸려 체포되어 거열형()을 당했음.

상앙의 변법은 크게 3가지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법치주의, 군국주의, 중농주의이다.

전국시대 후기를 개혁의 시대로 몰아넣은 공손앙, 즉 상앙은 개혁의 대명사다. 진정한 개혁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준 인물로 중국사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그의 개혁정치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의 극명한 대립상과 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상앙이 실천에 옮긴 변법의 의미는 단순한 법령의 개변이나 상층부의 개혁이 아닌, 철저한 개변이자 군사상의 개변이었으며, 정치개혁이자 정부조직과 사회구조·풍속의 개혁이었고, 심지어는 도덕 가치관과 인생관에 대한 일대 개혁이었음을 알게 한다. '변법'은 인류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가장 놀랍고도 심금을 울리는 마술이었다. 그것은 난쟁이를 거인으로 바꾸었고, 몰락해가던 민족을 생기발랄한 민족으로 변화시켰으며, 약소한 국가를 강대한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 상앙에 관련된 고사성어

- 도불습유(遺)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 연좌제와 신상필벌을 통한 강력한 법치주의 결과

- 이목지신(信)

상앙이 한번은 법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백성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상앙은 3장(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십금()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상앙은 다시 오십 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오십 금을 주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했다.

- 조로지위(危)

아침 이슬과 같은 위험.

상앙은 엄정한 법의 적용으로 인해 많은 귀족과 대신들의 원망을 샀다. 조량()이라는 사람이 상앙에게 충고하였다. “당신 목숨의 위태로운 상태는 마치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러나 상앙은 이 말을 깊이 새기지 않았다. 혜문왕()이 즉위하자, 많은 귀족과 신하들이 상앙이 모반하였음을 무고하고, 끝내 달아나려다 잡혀와 처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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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行無轍迹(선행무철적) 

_ 노자 도덕경 제27장

[길을 잘 가는 사람은 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善行 無轍迹(선행 무철적)
길을 잘 가면 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고

善言 無瑕謫(선언 무하적)
말을 잘 하면 허물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善數 不用籌策(선수 불용주책)
셈을 잘 하면 산가지를 쓰지 않고

善閉 無關楗而不可開(선폐 무관건이불가개)
문을 잘 닫으면 빗장을 쓰지 않아도 열 수가 없으며,

善結 無繩約而不可解(선결 무승약이불가해)
끈을 잘 묶으면 매듭이 없어도 풀리지 않는 것이다.

是以聖人(시이성인)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常善求人 故無棄人(상선구인 고무기인)
언제나 사람을 잘 구하기에, 버리는 사람이 없으며,

常善救物 故無棄物(상선구물 고무기물)
물건을 잘 구제하기에, 버리는 물건이 없다.

是謂襲明(시위습명)
이를 가리켜 밝음을 갖추었다고 한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고선인자 불선인지사)
그래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 되고,

不善人者 善人之資(불선인자 선인지자)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바탕이니,

不貴其師 不愛其資(불귀기사 불애기자)
그 스승을 귀히 여기지 않고 그 바탕을 아끼지 않으면 

雖智大迷 是謂要妙(수지대미 시위요묘)
비록 지혜롭더라도 크게 미혹될 것이니, 이를 신묘하다 할 것이다.


** 善行 無轍迹(선행 무철적)

그대로 해석하면 '길을 잘 가는 사람은 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로 풀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노자의 무위 자연 사상을 고려하면, '자연이나 인간에게 진정으로 좋은 행위는 그 대상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로 해석한다. 인위적인 영향을 가하고 흔적을 남기는 것은 노자 철학에 있어 좋은 행위(善行)가 아니다.

어떤 이는 '착한 행실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라고 풀기도 한다. 좋은 뜻으로 하는 행위는 그 결과가 눈에 드러나지 않아야 진정한 선행(善行)이라는 의미이다.

어느 해석이든 가르침이 크다.


** '선행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와 유사한 가르침은 많다.

"君子之道 費而隱(군자지도 비이은)"中庸(중용)
    "군자의 도는 그 쓰임은 두루 미치되 눈에 띄지 않는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_ 마태복음 6장 3절



** 善言 無瑕謫(선언 무하적)

말씀 言(언)은 의견이나 견해와 같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통상 누군가에게 조언하거나 간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瑕(하)는 하자 혹은 흠을 의미하고, 謫(적)은 책망이나 허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문장은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남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
자신에게든 상대에게든 허물이나 앙금을 남기지 말라"

불필요한 말을 내뱉고 나서 자책을 하거나, 부적절한 충고나 지적질로 상대의 가슴에 원한이나 불쾌를 남기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 常善求人 故無棄人(상선구인 고무기인)
항상 사람은 제대로 구하여야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疑人勿用 用人勿疑(의인물용 용인물의) _
의심가는 사람은 써서는 아니되고, 쓴 사람은 의심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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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클레스의 검

(the Sword of Damocles)


다모클레스(Damocles)는 BC4세기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왕(참주) 디오니시오스(Dionysius) 2세의 신하였다. 하루는 다모클레스가 디오니시오스 왕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하며 아첨을 하자, 디오니시오스 왕은 다모클레스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서로 자리를 바꿔보자고 제안하였다. 다모클레스는 왕의 배려에 감격하며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다모클레스는 기쁜 마음으로 호화로운 왕의 권좌에 않았다. 그런데 권좌에 앉아보니 그의 머리 위에는 다란 검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검의 손잡이는 한 가닥의 말총에 의해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려있었다

왕은 자신의 재임 중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기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잊지 않기 위해 권좌 위에 검을 매달아놓고 평소 스스로를 경계하였던 것이다. 

다모클레스는 큰 부와 큰 권력에는 반드시 큰 위험이 따르는 것(With great fortune and power comes also great danger)임을 절실히 깨닫고, 서둘러 그 자리를 물러났다. 

이 고사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가 연설에 인용함으로써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이라 명명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In Richard Westall's Sword of Damocles, 1812>


**
이 세상 모든 리더의 자리 위에는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이 매달려 있다. 사람들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리더 자리의 화려함만을 보고 부러워하고 시지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리더들은 자신이 해내야할 의무, 잘못에 대한 책임, 모범을 위한 절제 등으로 날카로울대로 날카로워진 검의 칼날에 불안과 근심을 안고 산다.

**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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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검(說劍) _ 장자

[천자의 검, 제후의 검, 서인의 검]


옛날 문왕(趙文王)이 검(劍)을 좋아하였으니,

사(劍士)들이 몰려와 식객(食客)이 3천여 명이나 되었고,

밤낮 없이 왕 앞에서 서로 싸워, 사상자가 한 해 백여 명이나 되어도,

왕은 그 취미에 싫증을 내지 않았다.

그러길 3년이 지나니 나라가 쇠하여, 다른 제후들이 조나라를 노렸다.

[昔趙文王喜劍 劍士夾門而客三千餘人 日夜相擊於前

死傷者歲百餘人 好之不厭 如是三年 國衰 諸侯謀之.]


태자 회(悝)가 이를 걱정하여, 좌우를 불러모아 말하였다. 

누가 왕을 설득하여 검 좋아하는 취미를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천금을 하사하리라." 

좌우에서 말했다. 장자(莊子)면 능히 해낼 것입니다." 

이에 태자는 사람을 시켜 천금으로 장자를 모시게 하였으나,

장자는 이를 받지 않고, 사자와 함께 가서 태자를 만나 말했다. 

태자께서는 무엇을 시키시려고 저에게 천금을 내리셨습니까?"

[太子悝患之 募左右曰 孰能說王之意 止劍士者 賜之千金 左右曰 莊子當能 太子乃使人以千金奉莊子 莊子弗受 與使者 俱往見太子曰 太子何以敎周 賜周千金.]


태자가 말했다.

“그대가 밝고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삼가 천금을 예물로 드리면서 모시고자 했는데, 그대가 받지 않으니, 내 어찌 감히 말을 하겠소?"

장자가 말했다.

태자께서 저를 쓰시려는 이유는

왕의 취미를 끊게 하려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를 시켜 위로는 대왕을 설득하게 하려했는데

그것이 왕의 뜻에 거슬리게 되면,

이는 곧 아래로는 태자의 뜻에 부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형벌에 처해져 죽게 될 것이니,

제가 천금을 쓸 일이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를 시켜 위로 대왕을 설득하였다면

이는 아래로는 태자의 뜻에도 부합합니다.

그러면, 조나라에서 무엇을 구하든 얻지 못하겠습니까?"

[太子曰 聞夫子明聖 謹奉千金以幣從者 夫子弗受 悝尙何敢言. 莊子曰 聞太子所欲用周者 欲絶王之喜好也. 使臣上說大王而逆王意 下不當太子 則身刑而死 周尙安所事金乎. 使臣上說大王 下當太子 趙國何求而不得也.]


태자가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 왕께서는 오직 검사들만 만나고 있습니다."

장자가 알겠습니다. 저도 검을 잘 씁니다.”하니,

태자가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 왕이 만나는 검사들은, 모두 풀어헤친 머리카락에 구레나룻을 하고 눌러쓴 삿갓에다 갓끈을 늘어뜨리며 옷은 뒷자락이 짧습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말이 거칠어야 왕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필경 유자의 옷을 입고 왕을 알현할텐데,
그러면 일은 크게 어긋나고 말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그러면 나에게 검복(劍服)을 마련해 주십시오."

3일 후 검복을 마련하여 태자를 만나고, 태자와 함께 왕을 알현하였다.

[太子曰 然 吾王所見 唯劍士也. 莊子曰 諾 周善爲劍. 太子曰 然 吾王所見劍士 皆蓬頭突鬢 垂冠曼胡之纓 短後之衣 瞋目而語難 王乃說之 今夫子必儒服而見王 事必大逆. 莊子曰 請治劍服. 治劍服三日 乃見太子 太子乃與見王.]



왕은 시퍼런 칼날을 뽑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자는 대전으로 들어가, 잰걸음을 하지 않고 왕을 보고도 절 하지 않았다.

왕이 그대는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태자를 앞세웠는가?"하니,

장자가 말했다.

대왕께서 검을 좋아하신다고 들었기에, 검으로 왕을 뵙고자 합니다."

왕이 그대의 검은 몇 사람이나 제압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장자가 말했다.

신의 검은 열 걸음에 한 명씩 베어 천리를 멈춤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천하무적이로다!"

[王脫白刃待之 莊子入殿門不趨 見王不拜. 王曰 子欲何以敎寡人 使太子先焉曰 臣聞 大王喜劍 故以劍見王. 王曰 子之劍何能禁制?

曰 臣之劍 十步一人 千里不留行. 王大悅之曰 天下无敵矣!]


장자가 말했다.

“무릇 검이라고 하는 것은,

빈틈을 보이고 몸을 열어 상대가 유리하게 여기게 하여,

늦게 발검하고 먼저 찌르는 것입니다.

이를 시험하고 싶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대는 객사에 가서 쉬며 명을 기다리시오. 시합 준비하여 부르리다."

이어서 왕은 검사들을 7일 동안 겨루게 하여,

6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5~6명을 뽑아 대전 아래에 검을 들게 하고서,

비로소 장자를 불러, 왕이 말했다.

오늘 검사들이 검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시오."

장자가 말했다“이 날을 기다린지 오래입니다."

왕이 말했다“그대가 쓰는 검의 길이는 어느 정도입니까?"

[莊子曰 夫爲劍者, 示之以虛, 開之以利, 後之以發, 先之以至 願得試之.

王曰 夫子休就舍 待命 設戲 請夫子.王乃校劍士七日 死傷者六十餘人 得五六人 使奉劍於殿下 乃召莊子.

王曰 今日試使士敦劍. 莊子曰 望之久矣. 王曰 夫子所御杖 長短何如.]


장자가 말했다.

신이 사용할 것은 모두 좋습니다만.

신에게 세 종류의 검이 있는데, 왕께서 쓰실 것만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들에 대해 말씀 드린 후 시합을 하게 해주십시오."

왕이 세 가지 검에 대해 물으니, 장자가 말했다.

천자의 검이 있고, 제후의 검이 있으며, 서인의 검이 있습니다."

[曰 臣之所奉皆可 然臣有三劍 唯王所用 請先言而後試

聞三劍 曰 有天子之劍 有諸侯之劍 有庶人之劍]



왕이 천자의 검이란 어떤 것이오?"라고 하니, 장자가 말했다.

천자의 검
연(燕)나라 계곡의 석성(石城)을 칼날로 삼고,
제(齊)나라 대(岱)나라를 칼끝으로 삼고,

진(晉)나라와 위(衛)나라를 칼등으로 삼고,

주(周)나라와 송(宋)나라를 칼자루테로 삼고,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칼자루로 삼으며,

사방의 오랑캐로 둘러싸이고, 사계절로 속이 채워지며,

발해(渤海)로 감싸서, 항산(恒山)을 띠 삼아 두릅니다.

오행(五行)으로 다스리고, 형덕(刑德)으로 따지며, 음양으로 펼치고,

지킴은 봄여름과 같이, 쓰임은 가을겨울처럼 합니다.

[王曰 天子之劍何如. 曰 天子之劍 以燕谿石城爲鋒 齊岱爲鍔 晉衛爲脊 周宋爲鐔 韓魏爲夾 包以四夷 裏以四時 繞以渤海 帶以恒山 制以五行 論以刑德 開以陰陽 持以春夏 行以秋冬]


이 검은,

바로 뻗으면 앞으로 걸림이 없고, 쳐올리면 위로 걸림이 없고,

내리치면 아래로 걸림이 없고, 휘두르면 사방에 걸림이 없으니,

위로는 뜬구름을 자르고, 아래로는 땅의 맥을 끊습니다.

이 검을 한번 쓰면,

제후들을 두려움에 떨게하고 천하가 복종하니,

이것이 바로 천자의 검입니다.

[此劍, 直之无前 擧之无上 案之无下 運之无旁 上決浮雲 下絶地紀

此劍一用 匡諸侯 天下服矣 此天子之劍也]

 

문왕망연자실(芒然自失)하게 있다가,

제후의 검은 어떤 것이오?"라고 묻자, 장자가 말했다.

[文王芒然自失 曰 諸侯之劍何如]


제후의 검,

지혜와 용기를 가진 선비를 칼날로 삼고,

청렴한 선비를 칼끝으로 삼고,

현명하고 어진 선비를 칼등으로 삼고,

충정이 뛰어난 선비를 칼자루테로 삼고,

호걸과 같은 선비를 칼자루로 삼으니,

이 검도 역시,

바로 뻗으면 앞으로 걸림이 없고, 쳐올리면 위로 걸림이 없고,

내리치면 아래로 걸림이 없고, 휘두르면 사방에 걸림이 없으니,

그리하여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삼광(해. 달, 별)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네모난 땅을 본받아 사계절에 순응하고,

가운데로는 백성의 뜻에 화합하여 온 나라를 평안하게 합니다.

이 검을 한번 쓰면,

천둥 번개의 우레와 같아서,

영지 내에서 군주의 명에 복종하여 따르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이것이 제후의 검입니다.

[諸侯之劍, 以知勇士爲鋒, 以淸廉士爲鍔, 以賢良士爲脊, 以忠聖士爲鐔, 以豪桀士爲夾, 此劍, 直之亦无前, 擧之亦无上, 案之亦无下, 運之亦无旁上法圓天以順三光, 下法方地以順四時, 中和民意以安四鄕此劍一用, 如雷霆之震也, 四封之內, 無不賓服而聽從君命者矣, 此諸侯之劍也.]


왕이 서인의 검은 어떠한 것이오?" 하자, 장자가 말했다.
[王曰 庶人之劍何如]


서인의 검은,

풀어헤친 머리카락에 구레나룻을 하고 눌러쓴 삿갓에다 갓끈을 늘어뜨리며 뒷자락이 짧은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뜨고 말을 거칠게 하면서, 왕 앞에서 서로 싸워, 위로는 상대의 목줄을 자르고 아래로는 간과 폐를 도려냅니다.

이것이 서인의 검이니 싸움닭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다 목숨이 끊어져 버리면, 나랏일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庶人之劍, 蓬頭突鬢垂冠, 曼胡之纓, 短後之衣, 瞋目而語難, 相擊於前, 上斬頸領, 下決肝肺, 此庶人之劍, 无異於鬪鷄一旦命已絶矣, 无所用於國事.]


지금 대왕께서는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서인의 검을 좋아하십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이를 심히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大王有天子之位而好庶人之劍, 臣竊爲大王薄之.]

 

왕이 마침내 장자를 이끌고 대전으로 올라갔다.

요리사가 음식을 올렸도 왕은 그 둘레를 세 바퀴나 돌았다.
장자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편안히 앉아서 기분을 안정시키십시오.

검에 관한 것은 이것으로 모두 다 아뢰었습니다."

[王乃牽而上殿宰人上食, 王三環莊子曰大王安坐定氣劍事已畢奏矣.]


문왕은 그로부터 석 달 동안 궁에서 나오지 않았고,

검사들은 모두 그들이 있던 곳에서 엎어져 죽어 있었다.

[於是文王不出宮三月, 劍士皆服斃其處也.]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