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돌을 치는 것과 같다(用石擊石)


진경공(晉景公) 시절 중군원수 순림보(荀林父)는 극옹(郤雍)을 시켜 도둑을 잡게 했다. 극옹은 도둑을 가려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양설직(羊舌職)이 순림보에게 말했다. 

"극옹은 도둑을 다 잡기 전에 죽게 될 것입니다"
순림보가 그 이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옛말에 깊은 물속에 사는 고기를 보고자하는 사람에게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기듯 깊이 감춰 둔 일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재앙이 따른다(察見淵魚者不詳 찰견연어자불상 知料隱匿者有殃지료은닉자유앙)고 했습니다. 극옹 한 사람만의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도적들을 다 잡을 수 없고, 오히려 도적들이 힘을 합쳐 극옹을 해치려 한다면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이 있은지 3일이 지나지 않아, 우연히 교외에 나가게 된 극옹을 도적 떼 십여 명이 힘을 합쳐 공격해 죽이고 그 머리를 잘라 가 버렸다. 순림보도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진경공은 양설직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불러서 물었다.

"경은 극옹이 당할 일을 미리 헤아렸소. 그러면 도적을 없애는 대책도 알고 있겠소."

양설직이 말했다.

"를 꾀로 제어하는 방법(以智禦智)은 마치 바위를 풀 위에 눌러 놓는 것과 같습니다(用石壓草). 바위로 눌러둔 풀은 반드시 바위 틈 사이로 자라서 올라오게 됩니다(草必罅生). 그리고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방법(以暴禁暴)은 마치 돌맹이로 돌맹이를 부수는 것(用石擊石)과 같아 두 돌맹이는 모두 부셔지고 맙니다. 고로 도적을 없애는 방법은 그 마음을 바르게 만들어 염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化其心術 使知廉恥). 도적을 많이 잡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조정에서 마음이 선량한 사람을 찾아 그들을 영예롭도록 하여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하면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도 스스로 감화되어 바르게 살고자 할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도적 때문에 골치를 썩이는 있겠습니까?"

​진경공이 말했다.



"지금 우리 진나라에서 마음이 가장 선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오? 경이 천거해 주기 바라오." 

"사회(士會)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회는 말에 믿음이 있고(言依於信), 행함에 옳음을 따르며(行依於義), 부드럽되 비굴하지 않고(和而不諂), 청렴하되 교만하지 않고(廉而不矯), 강직하되 도도하지 않고(直而不亢), 엄하되 사납지 않습니다(威而不猛)주군께서는 반드시 그를 등용해야 합니다."

진경공은 사회를 순림보가 죽어 공석 중인 진의 중군원수의 뒤를 잇게 하고 더하여 세자를 위하여 태부의 직도 행하도록 명했다. 사회는 범(范) 땅에 봉해져 그는 범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회는 도둑을 잡기 위한 형법의 조항들을 모두 없애고 백성들을 교화하여 선민이 되도록 권장했다. 그때부터 간악한 무리는 모두 섬진으로 도망가고 진나라에는 도적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진나라는 치세를 맞게 되었다.




話說荀林父用郤雍治盜,羊舌職度郤雍必不得其死,林父請問其說。羊舌職對曰:「周諺有云:『察見淵魚者不祥,智料隱慝者有殃。』恃郤雍一人之察,不可以盡群盜,而合群盜之力,反可以制郤雍,不死何為?」未及三日,郤雍偶行郊外,群盜數十人,合而攻之,割其頭以去。荀林父憂憤成疾而死。晉景公聞羊舌職之言,召而問曰:「子之料郤雍當矣!然弭盜何策?」羊舌職對曰:「夫以智禦智,如用石壓草,草必罅生。以暴禁暴,如用石擊石,石必兩碎。故弭盜之方,在乎化其心術,使知廉恥,非以多獲為能也。君如擇朝中之善人,顯榮之於民上,彼不善者將自化,何盜之足患哉?」景公又問曰:「當今晉之善人,何者為最?卿試舉之。」羊舌職曰:「無如士會。其為人,言依於信,行依於義,和而不諂,廉而不矯,直而不亢,威而不猛。君必用之。」及士會定赤狄而還,晉景公獻狄俘於周,以士會之功,奏聞周定王。定王賜士會以黻冕之服,位為上卿。遂代林父之任,為中軍元帥,且加太傅之職,改封於范,是為范氏之始。士會將緝盜科條,盡行除削,專以教化勸民為善。於是奸民皆逃奔秦國,無一盜賊,晉國大治。(원문출처) (역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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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삼퇴(三進三退) 


재상 자리를 세 번 나아가고 세 번 물러나면서도 그것을 영화나 근심으로 생각하지 않은 초장왕 시절의 명 재상 손숙오(孫叔敖)의 고사삼위삼거(三爲三)라고도 한다.  _ 장자(莊子) 외편(外篇) 전자방(田子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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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 견오(肩吾)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 번이나 재상이 되어도 그것을 영화로 생각하지 않고, 세 번이나 그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전혀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소.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그대를 의심했었소. 이제 그대의 마음이 매우 평정해 보이는데, 그대의 마음은 어떠하오?”

손숙오가 대답했다.

내가 남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소?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칠 수 없고, 가는 것을 잡을 수도 없다오. 나는 그 얻고 잃음이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뿐이라오.
내가 남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소? 그 영화가 자리에 있는 것인지 내게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소. 만일 그것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 나는 아무 관계가 없고(얻어도 기뻐할 것이 없고), 그것이 내게 있는 것이라면 자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오(잃어도 슬퍼할 것이 없음). 나는 장차 유유자적하게 온 세상을 노닐고자 하거늘, 어느 겨를에 사람의 귀천(貴賤)에 마음을 둘 수 있겠소?“

肩吾問於孫叔敖曰 '子三為令尹而不榮華,三去之而無憂色。吾始也疑子,今視子之鼻間栩栩然,子之用心獨奈何?' 孫叔敖曰 '吾何以過人哉!吾以其來不可卻也,其去不可止也,吾以為得失之非我也,而無憂色而已矣。我何以過人哉!且不知其在彼乎,其在我乎?其在彼邪,亡乎我;在我邪,亡乎彼。方將躊躇,方將四顧,何暇至乎人貴人賤哉!' 莊子 外篇 田子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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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과위무(止戈爲武)


‘무(武)’는 그칠(멈출) ‘지(止)’와 창 ‘과(戈)’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로서, 그 의미는 싸움을 그치게 하는 데 있다. 즉, 무력(武力)은 싸워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억제하고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선공(宣公十二年조 초장왕(楚莊王)의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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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초장왕(楚莊王) 17(B.C.597), 초나라가 정()나라를 쳐 굴복시키자, 진문공(公) 이후 중원의 패자를 자처하던 ()나라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필(邲) 땅에서의 전투에서 초나라에 크게 패배하였다


초장왕이 정나라 땅 형옹에 군대를 머물러 있을 때, 신하 반당이,

“임금께서는 어찌 병장기들을 끌어모아 쌓고 진나라 군의 시신을 거두어서 경관(京觀, 승전 기념의 큰 무덤)을 만들지 않습니까신이 듣기로는, 승전을 하면 반드시 자손이 그 무공을 보고 잊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하니,

초장왕이 말했다.

“잘 모르는 소리다. 글자를 봐라. ‘武’(무)자는 ‘止’(지)와  ‘戈’(과)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丙辰 楚重至於邲. 遂次于衡雍. 潘黨曰 君盍築武軍 而收晉尸以為京觀 臣聞克敵 必示子孫 以無忘武功. 楚子曰 非爾所知也 夫文 止戈為武.


"... 무릇 '武'(무)의 7덕은, 금폭(禁暴, 폭력을 금함)집병(戢兵, 무기를 거두어 보관함), 보대(保大, 큰 나라를 유지함), 정공(定功, 세상을 평정하는 공을 세움), 안민(安民, 백성을 편안히 함), 화중(和衆, 세상 사람들을 화합시킴), 풍재(豊財, 재물을 풍성하게 함)에 있. 그래서 자손이 그 가르침을 기억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이제 내가 두 나라 병사들의 뼈가 들판에 흩어지게 하였으니, 그것은 ()이다. 무력을 과시하여 제후들을 위협하였으니 폭(暴)하되 집(戢, 무기를 거둠)하지 못하였고, 그러니 어찌 큰 나라를 보유(保大)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어찌 세상을 평정한 공(定功)을 세웠다 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바라는 것에 거스른 것이 이미 많거늘 백성들이 어찌 편안(安民)할 수 있겠는가. 덕이 없으면서 제후들과 강함을 다투었으니 무엇으로 세상을 화목(和衆)하게 할 수 있겠는가. 남의 위태로움을 나의 이익으로 여기고 남의 환난을 나의 평안으로 삼아 내 영화를 누리고자 하니 어찌 재물을 풍족(豊財)히 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의 7덕 중 나는 한 가지도 가진 게 없는데 무엇을 자손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저 선대 왕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전쟁에 이겼음을 고할 수 있을 뿐이다

.. 夫武 禁暴 戢兵 保大 定功 安民 和眾 豐財 者也.故使子孫無忘其章.今我使二國暴骨.暴矣.觀兵以威諸侯 兵不戢矣 暴而不戢 安能保大 猶有晉在 焉得定功 所違民欲猶多 民何安焉 無德而强爭諸侯 何以和衆 利人之幾 而安人之亂 以爲己榮 何以豊財 武有七德我無一焉何以示子孫其為先君宮告成事而已.


그러니 무(武)는 나의 공적이 아니다옛날의 밝은 왕들은 불경한 자들을 토벌하여 그 우두머리를 죽여 땅에 묻고 흙을 쌓아올려 큰 치욕을 받게 하였다. 그런 일로 경관(京觀)이 만들어져불의하고 부정한 무리들을 징계한 것이다. 지금 진나라는 죄로 삼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고백성들은 모두 충성을 다해 그 군주의 명에 따라 죽었으니내가 어찌 그들을 구경꺼리 무덤(京觀)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초장왕은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선군의 사당을 지어 전승을 고한 후 초나라로 돌아갔다.

武非吾功也.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乎有京觀以懲淫慝今罪無所而民皆盡忠以死君命又何以為京觀乎祀于河作先君宮告成事而還._ 春秋左氏傳/宣公 十二年


[통영 통제영의 세병관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지과문]


무력(武力, Power) 즉 군사력의 진정한 의미는 전쟁 억제력에 있음을 2600년전 초장왕이 폐부를 찌르는 무의 일곱가지 덕(武有七德)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조신시대 3도 수군통제영이었던 통영의 세병관(洗兵館)을 오르기 위해 망일루(望日樓)를 지나 계단을 오르다보면 중간쯤에 지과문(止戈門)이 있다. 임진왜란의 뼈저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의 도발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보유하여야 한다고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이 현판을 문에 건 것임을 알 수 있다.

초장왕보다 약 100년 쯤 후에 나타난 최고의 병법가 손무도 이와 비슷한 명언을 남겼다. 그의 손자병법에서는 "백전백승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그토록 땀흘려 추구하는 재력, 지위, 명예 등도 모두 힘이니, 무(武)와 다르지 않다. 무(武)의 7덕(德)을 잘 새기면서 이 시대의 힘들을 왜 추구하고 어떻게 보유하고 물려줄 것인지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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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문지방을 높이게 하라


초나라 사람들의 관습은 낮은 수레를 좋아하였다. 초장왕은 낮은 수레는 말을 써서 끌기에 불편하기에, 수레의 높이를 높이도록 명령을 내리고자 하였다. 이에 재상 손숙오가 간하였다. 
"법령을 자주 내리면 백성은 따를 바를 잘 알지 못하니 좋지 않습니다. 왕께서 꼭 수레를 높이고자 하신다면, 마을의 문지방을 높이도록 지시하십시오. 수레를 타는 사람은 모두 군자이고, 군자는 자주 수레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장왕이 이를 허락하니, 반 년이 지나 백성은 모두 스스로 수레를 높였다.

, 便, 使. 曰,, , . , 使. , .」 . , . 史記 循吏列傳



춘추5패의 패자 중 한 사람인 초장왕(王)에게는 명 재상인 손숙오(孫叔敖)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손숙오의 고사이다. 

낮은 수레는 사람이 주로 끌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말이 그런 낮은 수레를 끌 수 없으니 물류와 생산성의 증대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초장왕은 나라 안의 모든 수레의 높이를 높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랜 기간 관습으로 생활에 깊이 젖어있는 것을 법이나 명령으로 고치고자 하면 필시 반발이 뒤따르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외부의 강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명 재상 손숙오는 그러한 백성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숙오는 법령으로 수레를 높이라고 명령하는 대신에 건물의 문지방을 높이게 하였다. 낮은 수레는 바퀴가 작아 높은 문지방을 넘을 수 없으니 수레를 탄 사람이 불가피하게 그 때마다 수레를 오르내려야 한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려면 바퀴를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레 수레가 높아지고, 높아진 수레는 말이 끌기에 적합하게 된다.

리더는 항상 변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한 길을 찾아내어 조직원을 설득하여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리더이다. 이에 반해 조직원에게 명령하여 몰아붙이는 사람을 보스라고 한다. 손숙오는 명령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백성들이 스스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명령하지 말고 스스로 하게 하라!


"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문지방을 높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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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오훼(長頸烏喙)형 인간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사람)


인생에서 좋은 때가 있듯이 어려운 때도 피할 수 없다. 인생 자체가 고락(樂)이 아닌가.
고락
(樂)은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인생에 교번하여 오간다. 즐거움은 좋은 추억이 되지만, 어려움은 좋은 가르침이 되어 우리를 더욱 성장시킨다. 이러한 인생의 고락은 누구와 함께 나누는가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경감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인간 관계는 고락의 오르내림을 언제나 변함없이 함께 나누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관계이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사람에게 동고동락을 요구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내가 부귀하여 좋은 상황일 때 사람들이 몰려오고 내가 빈천하여 어려워지면 떠나간다. 부귀다사(士) 빈천과우(友)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소위 장경오훼(喙)형 인간이다. 목이 길고 까마귀 부리같은 입을 가진 인간을 가리킨다.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범려는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고 춘추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게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공로에 대한 큰 보상을 버리고 월나라를 벗어나 제나라로 떠났다. 제나라에 도착한 범려는 그와 절친한 문종에게 다음 내용의 편지를 쓴다.

“날아다니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감추어지고, 날랜 토끼가 죽으면 사냥 개는 삶기게 된다오. 월왕의 사람됨이 목이 길고 입이 까마귀처럼 생겼으니, 환란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가  없는 사람이오. 그대는 어찌하여 떠나지 않소?” ( 蔵  烹.   去?)

이 고사에서 조진궁장(蔵) 토사구팽(烹)이라는 성어도 유래하였다. 토사구팽(烹)은 약 250년 후 한고조 유방을 도와 진시황이 통일한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신이 유방에 의해 그의 세력을 제거당하면서 한 말이기도 하다. 

과연 장경오훼 즉 목이 길고 입이 나온 사람이 환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일까? 관상학에서는 목이 짧으면 복록이 있고 길면 빈천하며, 입이 나온 사람은 야성적이고 자아가 강하다고 나와 있기는 하지만, 고락을 동반하기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범려는 관상학적인 관점과는 관계없이 구천의 인간적 특성을 그의 모습을 빗대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이다. 오왕 부차에게 패하여 회계산에서 항복한 후, 스스로 부차의  신하가 되어 말을 끌고 청소를 하는 등 치욕을 참으며 심지어는 부차의 똥을 맛보기까지 하여 거짓 충성을 다하다가 3년 후 극적으로 풀려난다. 돌아온 구천은 장작 위에서 자고 수시로 쓸개를 핱으며 "회계산의 치욕(회계지치) 잊어서는 안된다"고 외치면서 복수의 다짐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범려와 문종의 치밀한 전략으로 오나라를 결국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가 된다. 

이같이 구천은 복수에 대한 집념이 너무도 강하다. 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치욕을 견디는 참을성 역시 통상의 인간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강하다. 이런 류는 대체로 잔인하고 욕심이 많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자신이 어려울 때는 바싹 엎드려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얻어내지만, 형편이 좋아지면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사람을 까맣게 잊거나 그 도움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배신한다. 

몇 년전 내게 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있다. 당시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만난 사이였는데 언젠가부터 자주 찾아왔다. 나이가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형님이라고 부르며 받들어모시듯 하더니 어느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쉽지 않은 일이긴 했지만 내 노력과 인맥으로 어떻게 해볼만한 일이기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더니 다행히 큰 손해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연락도 없고 그럭저럭 잊고 지냈는데 며칠 전 찾아왔다. 형편이 좋아보였다. 그토록 혀가 감키도록 입에 담던 '형님'이라는 말도 쓰지 않고 심지어는 그냥 '허변리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이 교만해진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를 실망시킨 것은 점심 식당에서 한 짓이다. 서빙을 하는 40 중반 정도의 여종업원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하며 지시를 한다. 기가 찼다. 내 입장이 그 여종업원과 같아진 것 같은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범려가 말한 장경오훼(喙)형 인간이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이 사람은 목이 길지도 않고 까마귀 부리같은 입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는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어떤 짓도 할 있고, 좋아졌을 땐 남들을 업신 여기며 교만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다. 

'웨이터의 법칙'(Swansons Unwritten Rules of Management)이라는 게 있다. 식당 등에서 웨이터 즉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친절하지만 자신보다 약자인 종업원이나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장경오훼형 인간을 쉽게 식별해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도모해서는 안되며, 당연히 직원으로 채용하여서도 안되고, 그런 자가 상관이라면 범려처럼 가차없이 떠나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약자들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조심해야 한다.




** 와신상담(臥薪嘗膽)은 모두 구천이?

와신(臥薪)은 오왕 부차가 구천에게 패하여 죽은 아버지 합려의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를 다짐했던 것이고, 상담(嘗膽)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월왕 구천이 부차에게 패한 치욕을 복수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주체가 다르다는 기록(십팔사략)도 있다. 사기에는 구천의 상담(嘗膽)만 언급하고 있고, 오월춘추에는 와신(臥薪)과 상담(嘗膽)의 주인공은 모두 구천이라고 기록 되어 있다.


** 부귀다사(士) 빈천과우(友)


** 범려의 인생2모작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상인으로 변신하여 대단히 성공적인 2모작 인생을 살았다. 범려에 관한 김영수 선생의 다음 글들을 일독할 만하다.

[고전의 향기] 삼취삼산三聚三散
[‘중국 역대 상인(商人) 열전’] (12) 범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1 정치·군사·경영 두루 통달한 중국의 商神

[‘중국 역대 상인(商人) 열전’] 범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2) 너그럽고 후덕한 생활로 巨富 반열 올라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